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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닝레터- 비도 오고 그래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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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도 오고 그래서

오랫동안 동부에 살다 온 저로서는 이곳 북가주의 날씨가 너무 놀라워서 매일매일 탄성을 지르곤 했습니다.
습기에 질색하는 터라 건조한 것도 좋아라 했죠. 잠자리에 들 때마다 사각거리는 이불의 느낌은 저를 안온하게 만들어 더욱 꿀잠을 잘 수 있는 것 같았습니다.
매일 해가 쨍하며 날씨가 좋으니 더이상 날씨좋다는 말을 할 수가 없다며 동부에 사는 친구들을 놀리기도 했답니다. 비가 안오니 좋은 점만 있다며 줄줄 읊기도 했구요(하지만 산불이 무섭긴 했습니다).

그런데 참 사람이 정말 간사하다는 것이 실감나는 요즘입니다. 어젯 밤엔 제법 굵은 빗소리에 눈을 떴는데도 잠을 더 청하려고 하지 않고 그냥 후두둑 떨어지는 빗소리를 들었답니다. 아주 오랜만에 만난 친구랑 쳐다보기만 해도 편안하듯이 그 소리는 마음까지 푸근하게 만들었습니다.
아침에 일어나 강아지 산책을 못나가도 괜찮을 것 같았어요. 비가 오니 뜨끈한 수제비를 해먹을까 생각하면서 저절로 행복해지기까지 했으니까요.

가지지 못한 것에 대한 마음은 언제나 그렇습니다. 없으니 좋다에서 있으면 좋겠다로 바뀌는 순간이 항상 있죠.
엄마의 잔소리도 들을 때에는 진짜 싫었는데, 언제나 멀리서 전화로 듣는 엄마의 이야기엔 저를 향한 걱정과 그리움만 있을 뿐입니다. 그것만으로도 시간이 아까운데, 잔소리는 할 필요도 없다 생각하시는 것 같아요.
그런데 저는 또 혼자 있으면서 ‘이러면 엄마는 분명히 뭐라  했을텐데’ 하며 엄마의 잔소리를 그리워합니다.

오랜만의 비로 촉촉함도 반갑고, 비에 젖은 낙엽이 길바닥에 그림처럼 자국을 남긴 것에 감탄하면서 가지고 있는 것들의 존재감이 더없이 크게 다가옵니다. 사소한 것들이 주는 소소한 행복이라 일컬어지는 것들도 사실 엄청나게 큰 행복이라는 것을, 사라지고 난 뒤 알게되는 경우가 너무나 많습니다.

오늘 아침 공기는 정말 상쾌했습니다. 빨갛게 물든 나무잎들이 꽃처럼 보이고 낙엽을 떨구던 나무들도 생기가 도는 느낌이었습니다.

연말까지는 자주 맡게 될 촉촉한 공기이기에, 즐길 수 있을듯 합니다. ‘있을 때 잘하자’ 란 말은 ‘있을 때 즐기자’ 와 같은 의미로 다가옵니다. 우리 동네의 레어템, 비를 만나는 두어 달 간을 만끽하는 나날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글/ 한혜정(모닝뉴스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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