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세이 / 칼럼

모닝레터- 다시 시작하는 나에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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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시작하는 나에게

누구나 새로운 해를 맞아들일 때 하게 되는 ‘의식’ 같은 것이 있을 겁니다.
어릴 적의 저는 보신각 종이 울리기 시작할 무렵 식구들이 있는 곳을 벗어나 살금살금 제 방으로 가서 여백이 가득한 흰 공책에 나름의 계획을 쓰곤 했습니다. 학생 때였으니 계획의 범위란 고작 성적이나 책읽기 등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다람쥐 쳇바퀴 돌듯 그렇게 같은 자리에서 뱅뱅 돌았던듯 합니다. 그래도 흰 종이에 사각사각 연필소리를 들으며 쓰다보면, 바깥은 뭔가 떠들썩한데 저 혼자 조용하게 새로운 해와 마주하는 것 같아 늘 12월 31일 자정 직전이면 설레던 기억이 있습니다.

새로움이란 누구에게나 설렘과 같은 의미로 다가옵니다. 물론 새롭기 때문에 정체를 알지 못하는 것과 대면할 때와 비슷한 두려움과 같이 올 수도 있겠죠. 나이가 들다보니 1월 1일이란 하루는 그 전날의 하루와 다름이 없다는 것을 몇 번이나 실감 중이지만, ‘다시 시작한다’ 는 의미에서 ‘1’ 이란 숫자가 주는 새로움이란 꼬부랑 할머니가 되어도 여전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다시 시작하는 나에게, 내가 할 수 있는 배려란 무엇일까요.
과거의 나를 미워하지 않는 것, 과거의 나에게 웃어줄 수 있는 것, 과거의 내가 한 것들을 넉넉한 마음으로 품어줄 것. 그리고나면 다시 시작하는 이 출발선에서 마음은 든든하고 발자국은 더욱 단단해질 것입니다.

저는 이제 일 년 계획을 공책에 써내려가지는 않습니다. 그저 마음 속으로 무엇이든 다시 시작할 수 있음을 잊지않고 제 자신을 격려하려고 합니다. 지난 수년 동안 실패할 것을 뻔히 알면서도 늘 반복적으로 계획 안에 넣어왔던 일이라면 올해 또 다시 시작할 예정입니다.
 
그리고 다시 시작하는 나에게 괜찮다, 작년보다 조금 더 해냈네, 잘했다고 하려고 합니다. 그건 바로 욕망의 크기를 조금씩 줄이는 일이 제게 가장 큰 계획이라는 점을 깨닫고 난 후부터 시작된 일입니다.
계획과 욕망이 동의어는 아니지만, 어느 순간 같은 무게를 가지고 제게 다가온다는 것을 알게 되면서 욕망의 크기는 줄이고(현실적으로), 계획의 크기는 나누고(역시 현실적으로) 그렇게 하루의 시작을 늘 새해 첫 날처럼 지내보려고 합니다. 그것이 다시 시작하는 나에게 제가 해주는 가장 큰 격려입니다.

글/ 한혜정(모닝뉴스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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