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세이 / 칼럼

모닝레터 - 어른이 되는 나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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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에서도 이제 만 나이를 공식적으로 사용할 모양입니다. 그동안 한국과 미국을 왔다갔다 하다보면 내 나이가 마치 고무줄처럼 앞 뒤로 두 살까지 줄어들었다 늘어났다 하곤 했죠. 세는 나이보다 만 나이가 더 좋아질 때면 다들 나이드는 증거라 말하기도 했습니다. 어느 순간에는 정말 나이를 나타내는 숫자가 너무도 낯설게 느껴지기까지 했으니까요.

생각해보면 나이 삼십이 됐을 때 가장 ‘늙었다’고 생각했던 것 같습니다. 얼토당토도 하지 않던 생각이었죠. 하지만 이 치기어렸던 생각은 ‘어른’이라는 말과 통해 있었습니다. 20대의 패기는 왠지 어른같지 않게 느껴졌고, 30대로 들어서면서는 패기보다 어른다운 노련함으로 승부를 봐야한다고 생각했던 시절이었습니다.

반면에 제 아이한테는 열 살 무렵부터 ‘너는 이제 어른이다’ 라며 독립심을 강요했었던듯 합니다. 지금 생각해보면 완전 꼬맹이한테 무슨 말도 안되는 이야기를 한것인가 미안해지기까지 하는 기억인데요. 저에게 ‘어른’이란 말은 그 이전보다 자신의 행동에 대해 책임을 질 수 있는 레벨로 올라간다는 것을 의미했습니다. 책임감 있는 어른으로 키워야 한다는 생각으로 사실 제 자신은 그렇지도 못했으면서 아이한테는 어서 빨리 어른이 되기를 재촉했나 봅니다.

그렇다면 이제 나는 어른인가, 나의 행동에 온전히 책임을 질 수 있는 어른인가. 질문을 던지면서 벌써 부끄러워지는 마음입니다. 어릴 적, 지금 제 나이의 어른들은 정말 큰 어른 같았었는데 왜 지금의 저는 그때 그분들과 같은 나이 언저리인데도 그러지 못한 마음일까요.

‘나이란 숫자에 불과한 것이다’ 란 광고 카피에 고개를 끄덕이는 건 나이들었다는 증거다 라고 친구는 말했죠. 그럴듯함으로 포장한 위로일 뿐이라는 말이었습니다. 멋있게 나이들고, 낡지않은 어른이 되자 그 친구와 20대때 나누었던 말들은 둘다 서로 희미해진 기억 한 구석에 놓아두었을 뿐입니다.

문학평론가 고 황현선 선생님이 나이듦에 대해, 어른에 대해 쓰셨던 글귀에 모든 답변이 있는듯 합니다. ‘내가 살면서 제일 황당한 것은 어른이 되었다는 느낌을 가진 적이 없다는 것이다. 결혼하고 직업을 갖고 애들 낳아 키우면서도 옛날 보았던 어른들처럼 내가 우람하지도 단단하지도 못하고 늘 허약할 뿐이었다. 그러다 갑자기 늙어버렸다.준비만 하다가.’

어느 순간 어른이 되는 챕터로 책장을 넘기며 되는 것이 아니기에 어른이 된다는 것은 그래서 가장 어려운 일일지 모르겠습니다.

글/한혜정(모닝뉴스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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