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세이 / 칼럼

피아니스트 안미정의 음악칼럼_여름 끝자락의 그리움, 그리고 쇼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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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름 끝자락의 그리움, 그리고 쇼팽

여름의 끝자락을 향해 달려갈수록 왠지 모르게 아쉽고, 또 그리움의 감정이 짙어 집니다. 뜨거웠던 여름동안 못내 하지 못했던 것들이 떠오르거나 미지근하게 멈추고 말았던 것들이 떠오르는 일들이 잦아지지요. 아쉬움이 남긴 그리움은 가을에 물들어 갈수록 더욱 고개를 드는 것 같습니다. 기온이 서늘해지면서도 여전히 따스한 햇볕이 남아 있는 이 시기는 저에겐 그리움의 감정이 더욱 깊어지는 때이기도 한데요, 이런 시기에 떠오르는 음악은 단연 쇼팽의 녹턴 Op. 9, No. 2 입니다.
 
Nocturnes, Op. 9: No. 2 in E Flat Major. Andante by Frédéric Chopin


이 곡은 2002년 영화 ‘La La Land’에서 사용되었어요. 영화 속 주인공 미아와 세바스찬은 여름밤의 파티에서 서로의 감정을 확인하죠. 그리고 바로 그 순간, 이 음악을 배경으로 서로의 내면을 공유하는 장면이 연이어 등장해요. 쇼팽의 녹턴은 그들의 대화와 감정의 흐름에 깊이 한스푼을 더해 주며 로맨틱한 분위기를 더욱 부각시킵니다.

쇼팽 녹턴의 부드러운 멜로디와 감성적인 루바토 표현은 정말 특별해요. 오른손의 멜로디가 자유롭게 감정을 흘려 보내며, 왼손의 안정된 반주는 그 감정의 기초를 튼튼히 해줍니다. 이 조화는 영화 속 장면에서 주인공들의 내면의 요동침을 더욱 잘 느낄 수 있도록 도와줍니다. 
쇼팽의 녹턴을 들으며 느끼는 감동은 단순한 음악적 아름다움을 넘어, 인생의 소중한 순간들을 돌아보게 하는 힘이 있어요. 삶의 마지막 순간들, 혹은 중요한 결정의 순간들에서 울려퍼질듯한 호소력과 견고한 비장함이 담겨 있답니다. 자유로운 멜로디 표현을 뒷받침하는 안정적인 반주의 형태는 휘몰아치는 감정의 업앤다운 속에서도 균형을 잃지 않는 우아함을 묘사하는 듯해요. 어쩌면 이 곡은 우리의 감정을 진솔하게 드러낼 때에도, 그 감정을 지탱할 수 있는 내적인 힘을 찾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상기시켜 주는 지도 모르겠습니다. 

감정중에서도 그리움이라는 감정은 특히 영향력이 큰 것 같아요. 해외에서 생활하며 고국을 향한 그리움과 부모, 친지, 스승, 동무들을 향한 저릿함을 가슴에 품고 살아가다보니 가을이 찾아 오려는 이 시기가 매번 애틋합니다. 정처없는 그리움 속에서 중심잡기에 매번 실패하지만 그래도 다시 일어서 묵묵히 걸어온 지난날의 나를 칭찬하며 쇼팽의 녹턴으로 마음을 달래 봅니다.
그리움이 찾아오는 때, 그 감정의 중심에 바로 서 흔들리지 않기 위해 쇼팽의 녹턴을 들어보는 건 어떠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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