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세이 / 칼럼

Novel_김은경의 이야기_1. 이토록 환한 시간(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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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토록 환한 시간(2)



- 영규 덕분에 맥주 캔 들고 집 밖으로 나왔어. 달이 장관이네. 우리 다 같이 소원 빌자.
 
은수는 따끈한 캐모마일 차를 만들어 베란다에 놓인 탁자 앞에 앉았다. 하얀 잔에 담긴 황금빛 차가 보름달을 닮았다. 한바탕 동창들의 떠들썩한 대화가 이어지더니 하나 둘 밤인사를 남기고 휴대폰 너머로 사라졌다. 썰물이 빠져나간 듯 세상은 고요의 바다가 되었다. 달은 구름을 타고 천천히 유영했다. 이제 보름달은 점점 이울겠지. 가을도 깊어지고. 올해도 또 가겠구나. 매일 하루를 살았을 뿐인데 세월은 마구 내달렸고 많은 것들이 달라졌다. 은수는 입 안 가득 차를 머금은 채 흐르는 달을 올려다보았다.
은수는 생각난 듯 민철에게 개인톡을 보냈다.
 
  - 민철아, 네 달 사진 내 인스타에 올려도 되겠니? 내가 찍은 사진이라고는 안 할게.
  - 얼마든지. 내가 오히려 영광이지.
 
단체카톡방에서는 생존 신고 정도로 우정과 관심을 표현하는 성의가 최선이었다. 달사진을 핑계로 민철과 대화를 나누다보니 민철이 한 달 전 둘째 아들을 군대에 보낸 것도, 내일 훈련을 마친 아들 수료식 참석차 논산으로 간다는 이야기도 들을 수 있었다. 민철이 장성한 두 아들의 아버지라는 사실이 실감나지 않았다. 하긴 은수의 딸은 대학 졸업 후 직장 따라 분가까지 했으니 새삼스러운 일도 아니었다. 민철의 군복무 시절은 어땠을까. 그때는 서로 소식을 모를 때였으니 군복 입은 청년 민철의 모습은 상상하기 어려웠다. 초등학생 민철이 갑자기 정수리가 숭숭한 중년 아저씨로 시간을 뛰어넘어 나타난 것만 같았다.
은수의 스무 살은 어땠는지. 오래전 기억이 가물가물 떠올랐지만 생각은 모아지지 않고  손에 쥔 모래처럼 곧 흩어져버렸다. 오십 중반 나이를 넘기고는 은수는 자신의 지난날을 굳이 떠올리지 않게 되었다. 그냥 오늘만 잘 살아보자고 했다. 5년 전 남편을 사고로 잃은 이후로는 더더욱. 은수는 얼굴 한 번 보지 않은 민철의 둘째 아들을 생각했다. 멋진 청년이겠구나. 은수는 달을 보고 민철의 아들이 건강하고 씩씩하게 군 복무 잘 하기를 기원했다.
 
  - 은수야, 보름달 보면서 맥주 마시니 참 좋다.
  - 네가 이태백이니? 시 한 수 읊으면 딱이네. 나는 지금 차 마시며 달 보고 있지.
  - 그래? 우리 건배하자. 짠.
  - 오케이. 짜잔.
  - 그런데 왜 여긴 은수 네 사진에서처럼 달무리가 없지? 아쉬워.
  - 지금 이곳은 구름 낀 날씨. 낼 비 오려나봐.
  - 논산엔 비 안 와야 하는데.
  - 그러게 말이다. 근데 민철아, 너 인스타 해?
  - 아니, 은수 넌 그런 것도 하니?
  - 잠깐만 기다려 봐. 나 일기 쓰고 올게.
 
은수는 인스타그램에 민철의 달사진과 자신이 찍은 사진 몇 장을 올리고 시의 한 구절을 적어 포스팅했다.
   
    기도하는 것이다.
    고개를 들어 하늘을 우러르며
    숨을 천천히 들어마시기만 해도.
 
    <오래된 기도> 중에서. 이문재.

<다음 호에 이어집니다>

**작가 소개/ 김은경_ 서울에서 태어나 이화여대 국문과를 졸업했다. 2021년 경기히든작가 수필 부문 당선 후, 단편소설집(공저) <그해여름 오후2시> <매화로 48번길> <소설을 좇는 히치하이커>를 출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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