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세이 / 칼럼

황미경의 우리말 산책_1. ‘울긋불긋’ 단풍 들고 ‘하늬바람’ 솔솔 부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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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긋불긋’ 단풍 들고 ‘하늬바람’ 솔솔 부니

바야흐로 눈 닿는 곳마다 추색(秋色)이 완연한 가을입니다. 봄꽃만큼이나 즐길 시간이 짧아 아쉬운 늦가을의 정취를 한껏 느끼고 싶어 주말이면 차를 몰고 숲이나 공원으로 향해 봅니다. 제가 사는 캘리포니아 East Bay 지역에는 가을 풍경이 매우 화려한 빛깔을 자랑하지는 않지만, 드문드문 반짝이는 노란 잎사귀와 은은하게 붉은 나뭇잎들이 다채롭게 어울려 그 나름의 아름다운 빛깔을 만들어냅니다.


<애스펀 사시나무(Aspen Tree)의 금빛 단풍>

미국에 살면서 본 가장 아름다운 가을 풍경은 콜로라도주의 글렌우드 스프링스(Glenwood Springs)와 애스펀(Aspen)에서 본 풍경입니다. 2020년 10월 저희 가족은 텍사스에서 캘리포니아로 로드트립을 하던 중 콜로라도주에 들렀습니다. ‘Colorful Colorado’라는 주 팻말의 문구에 걸맞게 콜로라도의 가을은 무척이나 화려하고 아름다웠습니다. 특히 글렌우드 캐번스 어드벤처 파크(Glenwood Caverns Adventure Park)의 케이블카에서 아래를 내려다보았을 때 펼쳐져 있던 우아한 가을색의 향연은 마치 신이 짜놓은 융단과도 같았습니다. 애스펀의 레이크 사브리나(Lake Sabrina)에서 애스펀 사시나무(Aspen Tree, Populus tremuloides)들이 금빛 잎사귀들을 흔들며 반짝이던 장관은 아직도 잊을 수 없는 천상의 풍경으로 기억됩니다.

하지만 이토록 멋진 미국의 가을 풍경을 즐기면서도 마음 한구석에는 샛노란 은행잎과 새빨간 단풍잎이 울긋불긋 지천에 물들어 있는 한국의 가을이 그리움으로 남아 있습니다. 또한 저는 한국어를 가르치는 사람이라 한국의 가을을 떠올릴 때마다 ‘알록달록’, ‘울긋불긋’, ‘하늬바람’, ‘건들바람’, ‘아람’과 같은 예쁜 우리말들이 함께 생각납니다.

먼저 ‘알록달록’이라는 말은 옷이나 풍경에서 여러 색깔이 함께 모여 있는 것을 표현할 때 사용합니다. 사전에는 ‘여러 가지 밝은 빛깔의 점이나 줄 따위가 조금 성기고 고르지 아니하게 무늬를 이룬 모양’이라고 정의되어 있는데, ‘알록달록’이 ‘알로록달로록’의 준말인 것을 아는 사람은 많지 않습니다. 또한 ‘울긋불긋’은 ‘짙고 옅은 여러 가지 빛깔들이 야단스럽게 한데 뒤섞여 있는 모양’을 뜻합니다. 노랗고 빨갛게 물든 가을 풍경을 묘사할 때는 ‘알록달록’보다 ‘울긋불긋’을 더 많이 사용하는 것 같습니다. 그래서인지 많은 사람들이 ‘울긋’은 ‘노랗다’, ‘불긋’은 ‘붉다’는 뜻을 가진 것으로 생각하는데, 사실 ‘울긋’은 ‘울긋불긋’이라는 단어를 만들 때 운율을 맞추기 위해 더해진 말입니다.

다음으로 가을 바람과 관련된 우리말 중에는 ‘하늬바람’과 ‘건들바람’이 있습니다. ‘하늬바람’은 가을철 서쪽에서 불어오는 바람’을 말하고, ‘건들바람’은 ‘초가을에 선들선들 부는 바람’을 뜻합니다.

이 외에도 단체의 명칭이나 사람 이름으로 자주 쓰이는 ‘아람’이라는 말은 ‘밤이나 도토리 등이 충분히 익어 저절로 떨어질 정도가 된 상태. 또는 그런 열매’를 뜻하는데 말소리도 예쁘고 그 뜻도 이 가을과 잘 어울리는 말입니다.

오늘 당장 한국의 가을 풍경을 보러 가기는 어렵지만, 소중한 우리말들을 가족 또는 친구들과 함께 이야기하면서 남은 이 가을을 한껏 즐겨보는 것은 어떨까요?


**필자소개/ 황미경_이화여자대학교에서 국어학 박사 학위를 받고 10년 남짓 대학에서 한국어를 가르치고 연구해왔다. 현재 샌프란시스코 한국교육원의 Adult Korean Class에서 미국의 성인들을 대상으로 한국어를 가르치고 있으며, 한국어 연구자, 한글학교 교사로서도 다양한 활동들을 하고 있다.  이메일 주소: mkhwangkorean@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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