믿음과 투자 이야기
본문
자본주의가 굴러가게 하는 본질은 무엇일까? ‘호모 사피엔스’라는 스테디셀러를 집필했던 유발 하라리는 그것을 ‘눈에 보이지 않는 추상적인 것을 믿을 수 있는 집단적인 믿음’으로 설명한다. 호모 사피엔스라는 평범한 종이 다른 종을 뛰어넘어 세상을 지배하는 존재가 될 수 있었던 힘의 본질이라는 말이다. 이게 무슨 뜻일까? 눈에 보이지 않는 것을 믿기 때문에 힘이 나온다고? 언뜻 생각해서는 잘 이해가 가지 않는 주장이다.
집에서 키우고 있는 개나 고양이와 같은 반려동물을 생각해보자. 이들은 생각보다 생존 본능적이고 감정 지능이 매우 뛰어나다. 사람처럼 말을 하지 못할 뿐 다양한 비 언어적인 몸짓과 표정, 그리고 울음 소리로 자신의 감정과 상황을 표현하고 소통한다. 그리고 의도된 학습에 따라 사물을 구분하고 사람의 말을 알아듣기도 한다. 좋아하는 간식을 이용해서 집사가 원하는 행동을 학습시킬 수 있고 해서는 안되는 행동을 교정할 수도 한다. 그러나 이 모든 것들은 눈에 보이는 것들을 이용해서만 가능하다. 예를 들어 내가 강아지에게 ‘사랑’이라는 추상적인 말의 의미를 학습 시키거나 고양이에게 ‘돈’이 현실 세계에서 얼마나 힘을 갖는지 설명하기란 불가능하다. 당연한 말이지만 비록 강아지나 고양이의 울음을 알아 들을 수 있는 슈퍼 언어 능력을 가지고 있다고 해도 강아지나 고양이에게 ‘사랑’이나 ‘돈’과 같은 추상 개념을 이해시키는 것은 별개의 일이다.
그렇다면 아직은 이런 개념이 없는 3-4살 꼬마에게 ‘사랑’이나 ‘돈’을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당연히 언어 능력이 필요하다. 그만큼 사람에게 언어 능력은 매우 특별하고 소중한 능력이다. 중요한 것은 언어 능력을 바탕으로 우선 눈에 보이는 것들을 설명하면서 생각을 전달할 수 있다. 맛있는 과자를 보여준 다음 내가 먹으면서 기분 좋은 표정을 지으면 꼬마는 그게 무엇인지 궁금해할 것이다. 그 과자를 주면 꼬마도 따라서 먹을 것이고 기분 좋은 표정을 지을 것이다. 이런 과정에서 ‘좋아한다’는 개념을 설명할 수 있다. 그리고 좋아하는 사람에게 과자를 주는 것을 가르칠 수 있다. 즉, 좋아하는 사람에게 좋은 것을 주는 것을 ‘사랑’의 구체적인 표현으로 설명할 수 있을 것이다. 꼬마가 이 정도 따라왔으면 돈을 설명하기란 더 쉽다. 이게 있으면 원하는 것과 바꿀 수 있는데 물건에 따라 더 많이 혹은 더 적게 필요한 것을 설명할 수 있다. 꼬마의 머리 속에는 좋아하는 까까를 얻기 위해서는 돈이 필요하다는 것을 직관적으로 깨닫는다. 내가 가지고 있는 돈에 대한 생각과 방금 4살 꼬마가 알게 된 돈의 정의가 크게 다르지 않다. 인간은 이러한 방식으로 돈, 자본주의, 종교, 민주주의, 인권, 국가, 자유, 헌법과 같은 추상적인 개념들을 오랜 시간 발전시켰고 그 개념을 공유하면서 함께 믿게 되었다는 것이 바로 유발 하라리의 주장이다. 사실 구체적인 의미는 사람에 따라 다를 수 있지만 어쨌든 사회 구성원들이 다소 모호하게 그것을 함께 믿으면서 기본적인 의미를 공유할 수 있기 때문에 현실 세계에서 힘을 발휘한다는 뜻이다. 예를 들어 자본주의를 인정하지 않는 사회에서 돈의 힘은 무척 약하거나 아예 존재하지 않을지 모른다. 불교를 대부분 믿는 국가에서는 이슬람교나 기독교는 전혀 영향력을 발휘 하지 못한다. 단지 다른 종교의 교리를 모르기 때문이 아니다. 세상을 바라보는 관점이 전혀 다르고 이를 대하는 사람들의 삶의 우선 순위가 전혀 다르기 때문이다.
이러한 관점에서 유발 하라리는 자본주의를 하나의 종교로 설명한 바 있다. 사회 구성원들의 행동과 가치관에 영향을 주는 공통된 믿음이라는 관점에서 자본주의는 기독교나 불교와 같은 종교와 크게 다르지 않다는 뜻이다. 다소 논란이 있는 주장이기는 하지만 현실적으로 자본주의는 다른 종교보다 오히려 더 강력한 힘을 발휘하고 있다. 자본주의를 ‘눈에 보이지 않는 공통된 인류의 믿음’이라는 렌즈로 들여다볼 때 그 안에는 여러가지 믿음들이 존재함을 깨닫게 된다. 자본주의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것이 자본인데 쉽게 말해서 돈이라고 할 수 있다. 돈이란 눈에 보이는 지폐나 수표를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교환 가치를 인정하는 사회 구성원들의 믿음이다. 우리가 ‘돈이란 곧 신용’이라는 말을 그토록 많이 들었던 이유이기도 하다. 여기에는 다양한 종류의 믿음이 존재한다. 돈은 언제나 다른 상품 혹은 서비스와 교환이 가능하며 다른 이에게 빌려줄 수도 있고 빌릴 수도 있다. 누군가에게 빌려주기 위해서는 나중에 다시 돌려 받는다는 믿음이 필요한데 즉 신용이 있어야 가능하다. 이러한 신용이 사라지면 돈을 빌리거나 빌려줄 수 없으니 돈이 돌지 않는다. 돈이 돌지 않으면 개인 뿐 아니라 기업 간의 거래가 막히고 연쇄 부도가 발생할 수 있다. 이러한 돈은 눈에 보이는 지폐 뿐 아니라 정부가 발행하는 빚인 국채, 기업이 발행하는 기업채, 개인들의 빚을 의미하는 가계부채로 운영된다. 자본주의의 핵심은 ‘신용 = 돈 = 빚 = 채권 = 유동성’ 이라는 의미다. 결국 자본주의 사회에서 살아가는 우리들의 믿음은 이러한 신용에 달려있다. 믿을 수 없으면 빌려줄 수 없고 빌려주지 않으면 돈이 돌지 않는다. 돈이 돌지 않는데 어떻게 기업이 제대로 운영될 수 있겠는가. 기업이 부실화되면 나라의 경제가 망가지는 것은 순식간이다. 일단 망가지면 이를 복구하는데 더 많은 시간과 자본이 필요하다. 지난 2008년 그리고 2020년 미국의 FED 연준이 천문학적인 돈을 푸는 과정에서 ‘도덕적 해이’라는 욕을 먹으면서도 자본 시장을 지키려고 필사적으로 애썼던 이유이기도 하다.
그렇다면 일반 투자자들이 꼭 지켜야할 믿음은 무엇일까? 인류가 존재하는 한 자본주의 시스템은 계속될 것이다. 이는 단지 사람의 욕심 때문만 아니라 좀 더 발전하고 나아지길 원하는 사람의 본능 때문이다. 자본주의 시스템이 존재하는 한 어려운 문제를 풀어 가는 과정에서 혁신 기업들은 계속해서 새로 태어나고 발전하며 성장할 것이다. 새로운 비즈니스에 도전하고 이익을 창출하며 진짜 성장을 보여주는 기업들에 대한 믿음과 인내가 있어야 소중한 열매를 딸 수 있다. 유발 하라리의 주장처럼 보이지 않는 것을 함께 믿는 과정에서 엄청난 영향력이 발생하며 그것이 바로 인류가 발전해온 힘의 원천이기 때문이다. 내가 무엇을 믿는지는 정말 중요하다. 그 믿음은 오늘도 우리들의 삶에 큰 힘과 영향력을 발휘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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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쁨님의 댓글
- 익명
- 작성일
확 와닿는 표현입니다.
젊었을때는 잘 살 수 있을거라는 기대가 있어서인지 주머니가 비었어도 괜찮았는데 나이가 들며 점점 돈이 주는 힘이 크다는 걸 느끼게 됩니다.
부정하고싶지만 부모님을 향한 효도도, 자식 사랑하는 마음의 척도도 돈이라는 어른들 말씀이 점점 와닿기 시작합니다.
자본주의교에서 보면 저는 참 신실하고 굳건한 믿음을 가진자입니다. ㅠㅠㅠ
청년정군님의 댓글
- 익명
- 작성일
다만 그 밈음이 중간중간에 흔들리는 우리가 문제지요. 그래서 늘 오를때 사고, 내릴대 파는 우를 자주 범하곤 하지요.
하여간 내 선택에 대한 믿음을 지키려는 믿음이 중요할 것 같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