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과 투자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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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과 투자 이야기
고대 문명에서 시간에 대한 개념과 측정 방법이 탄생된 것은 아마도 체계적인 농업이 본격적으로 발전했기 때문으로 보인다. 초창기 농업에 있어서 성공적인 수확을 위해서는 계절의 주기적인 변화와 함께 달과 태양의 움직임을 이해하고 예측하는 것이 매우 필수적이었을 것이다. 고대 바빌론과 이집트에서는 달과 태양이 하늘에서 움직인 거리를 이용해서 시간을 표현했다는 기록이 있다. 바빌로니아인들은 1년을 360일로 나누었는데 동그란 원을 360도로 구분한 관습은 지금도 사용되고 있다. 지금의 24시간 체계는 그리스 천문학자인 히파르코스가 최초로 제시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는 낮과 밤의 길이가 같은 날에 각각 낮과 밤을 12개로 나누어 그 기준이 되는 1시간을 시간의 표준 단위로 사용할 것을 제안했다. 당시에는 널리 사용되지 않았지만 현재 우리가 사용하는 시간 구분과 비슷한 점이 매우 흥미롭다.
이후 천체에 의존하지 않고 일정한 길이의 시간을 독립적으로 측정하게 된 것은 14세기에 기계식 시계가 발명된 이후였다. 한편 한 시간을 쪼개어 정확히 분 단위로 측정하기까지 무려 200여년이 더 걸렸다. 초 단위 시계가 등장한 것도 16세기였는데 천문학자였던 브라헤는 천체를 정밀하게 측정하기 위해 초침이 달린 시계를 만들었다. 이후 진자 운동을 이용한 초정밀 시계까지 발명되었지만 측정 위치에 따라 진자 운동의 주기가 달라진다는 문제가 있었다. 본격적인 대항해시대가 시작되면서 항해 경로와 방향을 정하기 위해서는 천체의 움직임을 정확히 측정해야 했고 이를 위해서는 시간을 정확하게 알아야 했다. 영국의 앤 여왕은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2만 파운드의 상금까지 걸었지만 아무도 성공하지 못했다. 당시의 2만 파운드를 현재 가치로 환산하면 약 55억원에 해당하는 큰 돈이었다. 심지어 만유인력의 법칙을 발견한 위대한 과학자인 뉴튼조차 해결하지 못했던 난제였지만 마침내 일천한 목공 출신이었던 영국의 시계공인 해리슨이 초정밀 태엽식 시계를 1735년에 발명함으로써 이 문제를 해결했다. ‘Marine Timekeeper Harrison One, H1’이라고 이름 붙여진 이 시계는 100일에 1초밖에 틀리지 않는 꽤나 정밀한 시계였다. 사실 먼바다를 항해하기 위해 만들어진 거대한 기계 장치였기 때문에 시간(chronos)을 계측한다(meter)는 의미에서 ‘크로노미터’라고도 불리웠다. 요즘 전문 레이서들이 사용하는 초정밀 고급 손목 시계를 살펴보면 크로노미터라는 작은 문구가 들어가 있는데 바로 H1에서 기인한다. 이처럼 인류가 시간을 매우 정확하게 측정하게 된 것은 불과 300여년도 되지 않은 비교적 최근의 일이다.
그렇다면 투자에 있어서 시간은 어떤 의미를 가질까? 사실 투자에 있어서 시간은 매우 중요한 본질적인 요소이자 핵심적인 개념이라고 할 수 있다. 투자 기간을 1일 단위로 짧게 가져가면 투자 승률은 약 50%로 나온다. 한편 투자 기간을 1년 단위로 늘리게 되면 투자 승률은 약 75%까지 늘어난다. 그렇다면 투자 기간을 10년으로 늘리게 되면 어떻게 될까? 놀랍게도 무려 99%의 승률에 도달한다. 물론 이는 시장 평균에 대한 과거 데이터를 바탕으로 도출한 통계치이고 사실 투자 수익률이 아닌 손익에 대한 확률이기 때문에 절대적인 데이터는 아니다. 즉, 개별 기업에 적용하거나 미래에 적용한다면 전혀 다른 결과를 보게 될 수도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투자에 임하는 시간 지평을 짧게 가져갈 수록 투자에서 손실을 보게 될 가능성이 높아지고 반대로 시간을 늘릴 수록 투자 수익을 거둘 가능성이 높다는 점을 알려준다. 그렇다면 일반적으로 단기투자에 비해 장기투자가 유리한 이유는 무엇일까?
대다수 현대인의 뇌는 아직도 먼 과거의 수렵 채집 시절처럼 작동한다. 과거 인류의 조상들의 수명은 매우 짧았고 1년이나 10년 뒤 보다는 내일 혹은 일주일 후 생존이 더 중요했다. 먼 미래의 불확실한 큰 이득보다는 당장 내일 거둘 수 있는 작은 이익이 생존에 더 중요했다. 이러한 단기적인 이득에 대한 본능은 여전히 우리 마음을 지배한다. 또한 우리는 기다리는 것을 싫어하고 즉각적인 피드백을 매우 좋아한다. 내가 뭔가를 했을 때 바로 그 결과를 확인하고 싶어하는 본능이라고 할 수 있다. 카지노는 이러한 본능을 교묘히 활용한다. 사람들이 뭔가 베팅을 했을 때 사실은 무작위로 결과가 나오지만 거기에 어떤 패턴이 있다고 믿게 만드는 것이다. 도박꾼들은 자신이 참여한 게임에서 어떤 패턴을 찾았다고 확신하면서 베팅을 반복하게 된다. 결국 대다수의 도박꾼들은 돈을 잃게 되고 반대로 카지노는 돈을 벌게 된다. 투자도 크게 다르지 않다. 투자 지평이 짧아지는 단기 투자를 위주로 하게 되면 승률이 낮은 홀짝 게임을 하게 될 가능성이 높아진다. 투자는 오르내림의 방향성을 맞추는 게임으로 변질되고 주가 패턴에 대한 잘못된 확신으로 인해 횟수가 반복될 수록 대다수의 투자자는 돈을 잃게 된다. 반대로 투자에 임하는 시간의 지평이 길어진다면 이러한 변동성의 함정이 가져오는 기여도는 낮아진다. 무엇보다 시간이 오래 흐를수록 기업과 경제가 성장하면서 만들어지는 근본적인 가치가 시장에 적절히 반영될 가능성도 높아진다. 또한 시장 참여자들의 심리나 유동성의 오르내림 사이클을 객관적으로 살펴보는 기회도 얻을 수 있다. 워런 버핏은 주식 시장을 인내심이 적은 사람들의 돈이 오래 기다릴 줄 아는 사람들에게 옮겨 가는 곳이라고 말한 바 있다. 인류 문명이 시간을 정확하게 측정하게 되면서 크게 발전했던 것처럼 자신만의 투자 시간을 미리 정의하고 이를 원칙으로 잘 지켜낼 수 있다면 좋은 성과를 거둘 가능성이 높아진다. 투자에 있어서 시간은 너무도 중요한 핵심적인 요소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