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로 읽는세상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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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월 폭염 / 성백군
저건 난동이다
단지 8월이라는 이유 하나만으로
막무가내로 쳐들어와 열기를 뿜어대며 무전취식 하려 드니
제집이라 한들 어느 누가 견딜 수 있으랴
산이며 바다며 사람 홍수다
계곡에서는 다 큰 남자들이 벌거벗고 엉금엉금 기며 물장구치고
바다에서는 파도를 안고 뒹굴다 못해
모래에 묻혀 시체놀이를 하는 멀쩡한 여자들
사람이 더위를 먹으면 완전 도나 보다
종일 미치다가 간 백사장에는
비닐봉지, 담배꽁초, 음식물 쓰레기, 빈 병, 삼각팬티가
낡은 달빛 아래 부끄러움도 없이 도도하다.
마치 승전(勝戰)의 포획물처럼,
텃밭에서 일하던 노인이 발갛게 익어 죽고
차 안에서 잠자든 젖먹이를 깜박 잊었다가 죽였다고 하고
폭염에 죽음이 무슨 유행병처럼 보도되는 데도
중동에는 열돔 현상으로 체감온도가 C 74도가 넘는다고 하니
이런 일 가지고 국제기구에 구호기금을 청구할 수도 없고
이러다간 대한민국 사람들 주택가 골목은 무인지경이 되겠다 싶은데
그래도 담 그늘 뒤지며 늙은 개 한 마리는
혀 빼물고 졸고 있다
털옷도 벗지 않은 채 잘 견뎌내고 있는 것을 보면
폭염도 잠시 지나가는 난동이지 주인은 아닌가 보다
말복 지나 처서가 오면
제풀에 숨죽이며 까무러질 것이라며
다가서는 나를 보고도 짖을 생각은 않고 눈만 껌벅인다
저 비굴한 모습, 나도 기꺼이 일상으로 돌아가기 위해서는
개처럼 죽어가는 모습을 보이며 폭염을 견디어 보면 어떠하랴
누구는 천지를 얻기 위하여 무식한 놈의 가랑이 밑을 기었다는데
잠시 시간에 기대어 사지를 늘어뜨리고
바닥을 기며 겸손을 배우는 것
그러면 폭염이 혹 봐주지 않을까? 아니더라도
힘없는 나를 일으켜 세우지는 못할 터
괜찮은 피서 방법이라고 권하고 싶은데
어느새 벌컥벌컥 폭염보다 더한 화가 치솟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