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세이 / 칼럼

모닝레터 - 여행의 기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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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이란 말을 떠올리면 생각나는 단어들의 묶음이 있습니다. 설레임, 추억, 사진 그리고 당황스러움. 여행 가기 전이면 엄청나게 설레어하며 매우 촘촘하게 계획을 세우는 편이어서 사실 가기 전에 이미 가본 것 같은 기분이 느껴질 때도 있습니다. 각종 사이트를 섭렵하면서 빠진 건 없는지 여러 후기를 읽고 사진을 보고 두번 세번 다시 확인하곤 합니다. 하지만 늘 뒷통수 한방을 시원하게 맞는 기분이 되죠. 생각해보면 여행지에서 계획대로 완벽하게 되기를 기대하기란 토끼에 뿔나기를 기다리는 것과도 같을지 모릅니다. 패키지로 묶어진 단체여행에서도 날씨라는 변수가 끼어들 때면 계획이 틀어지게 마련인데, 하물며 가보지 않은 곳에 스스로 세운 계획이 완벽하게 이루어질 것이라 믿는 건 천부당만부당한 일인 거죠.

그래서 이 계획과 틀어진 당황스러움은 뜻밖의 즐거움으로 맞아야 할 경우가 많습니다. 그리고 이 뜻밖의 즐거움이 나중에 여행의 하이라이트로 남게 되어 가장 강력한 기억으로 저장되기도 합니다.
이 기억이란 낯선 곳에서 유난히 날이 선듯하게 예민해진 감각과 맞닿아 있을 때가 많습니다. 공항에서 문을 열고 택시를 잡으려는 순간에 훅 들어왔던 습기, 처음 맡아보는 향료의 냄새, 전혀 읽어낼 수 없었던 간판을 봤을 때의 당혹함, 오토바이 소리로 가득한 거리. 감각과 연관된 기억은 미처 예상하지 못했던 거여서 처음엔 당황하지만 집에 돌아와 사진을 볼 때면 그 습기가, 냄새, 소리들이 다시 느껴지곤 하죠. 아련하게 다가오는 기억 속에 다음 여행을 또 기대하게 되기도 합니다.

즉흥의 멋, 의외성. 여행의 묘미가 이런 데 있기 때문에 여행 계획은 좀 느슨하게 잡는 것이 좋습니다. 중간 중간 끼어들 공간을 남겨 놓는 것. 제가 소위 ‘무자비한 계획러’라 불리우다가 요즘은 적어도 삼분의 일쯤은 여지를 남겨 놓자 결심한 이유이기도 합니다.

주변에서도 흔히 듣곤 하죠. 이번 여행에선 갑자기 만난 소나기때문에 들어갔던 까페때문에 다음에 또다시 가고 싶어졌다, 골목을 돌자 모퉁이에서 만난 거리의 악사가 이번 여행에서 가장 멋졌다..이렇게 계획표에 없었던 우연이 나중에 기억의 해상도를 최고로 높여주게 되는 것입니다.

여름의 한가운데로 들어서고 있습니다. 편안한 우리의 공간을 벗어나서 낯선 곳을 향해 떠나볼 때입니다. 생각하지도 않았던 즐거움을 위해, 계획엔 없었지만 즐기게 될 뜻밖의 것들을 상상하면서 건강한 여행을 즐기시길 바랍니다.

글/ 한혜정(모닝뉴스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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