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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발레리아 루스티카나의 프리마돈나, 성악가 배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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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발레리아 루스티카나의 프리마돈나, 성악가 배유지

아들이 출연한 오페라를 가족 모두가 같이 보고 극장을 나서던 찰나, 아버지는 자신을 겨눈 총알이 딸의 가슴을 관통해 피로 붉게 물드는 것을 보며 그대로 계단에 쓰러져 절규한다. 차마 소리를 지를 수도 없는 절망을 나타내듯 영화의 장면은 무심히 흐르는 음악으로 덮힌다.
하지만 선율은 철저하게 비극으로 가득해서 가슴이 먹먹해졌던 그 순간을 <대부3>을 봤던 누구라면 다 기억할 것이다.

이 곡은 성악가 배유지 씨가 주인공 ‘산뚜짜’로 열연을 펼친 <카발레리아 루스티카나>의 간주곡이다. 그리고 산뚜짜가 절망의 나락에 빠져 가장 비극적일 순간을 예감할 때 그 특유의 선율은 아름답게 흘러나와 우리를 휘감는다.



“어쩌면 이보다 더 비련의 여주인공일 수 없겠다 싶을 정도로 산뚜짜는 가장 깊은 곳에 있는 감정까지 남김없이 쏟아내는 역할이예요. 굉장히 입체적인 인물이죠. 원하는 것은 애인을 다시 돌아오게 하는 그것 하나이지만 감정은 다차원적이어서 준비하는 동안 내내 산뚜짜 생각에서 벗어나기 어려웠답니다.” 지난 3월 3일부터 5일까지 오페라 온탭 샌프란시스코에서 무대에 올린  <카발레리아 루스티카나>에서 배유지 씨는 비극의 시작과 끝을 아우르는 산뚜짜역을 맡아 관객들의 기립박수를 받았다.
처음부터 끝까지 변심한 애인을 찾는 애절함부터 생각지도 않았던 상황에 기도를 청하는 순수한 슬픔, 버림받았음을 받아들이며 생기는 자기연민, 시련에 자신을 내던지는 비참함까지 배유지 씨는 눈빛과 동작 그리고 그녀만의 목소리로 모든 감정을 다 표현해냈다.

“어렸을 적부터 무대체질이었을 수 있다’며 웃는 그녀는 유치원 재롱잔치 때 친구들과 노래를 하며 본인의 목소리가 너무 커서 숨고만 싶었던 부끄러움 많은 소녀였다. 하지만 ‘다른 사람일 수 있는 무대’ 에 계속 끌렸다고 한다.
“합창단이나 노래를 부르는 활동은 꾸준히 했지만 성악을 전공하리라고는 예상하지 못했었죠. 그래서 남들보다 훨씬 늦게 성악 공부를 시작한 셈이예요. 중3때 예고준비를 시작하면서 안될 수 있으니 마음의 준비를 하자는 선생님 말씀도 들었으니까요.” 운명은 배유지 씨에게 합격을 안겨줬고, 일년 뒤에는 목소리가 트이면서 풍부해지는 놀라운 경험도 했다고 한다.



배유지 씨는 오페라에서 가장 선호한다는 리릭 소프라노 Lyric Soprano 다. 거기에 인디애나대학에서 예술가학위라 불리는 Artist Diploma를 받았다. 성악과, 작곡과, 기악과 등 음대 모든 교수들의 만장일치가 필요한 까다로운 과정을 거쳐야하는 학위다. 그리고 신시내티 대학교 음악원에서 석사 학위를 받았으며, 2015년 인디애나대학 오페라극장에서 오페라 데뷔, 2016년 체코 프라하의 에스테이트 극장에서 <돈조반니>의 도나 안나역으로 유럽 데뷔, 2018년에는 피츠버그 페스티벌 오페라와 함께 <라보엠>의 미미를 부르는 등 배유지 씨는  무대에서 더 빛이나는 성악가로 알려져있다.



“산뚜짜 역할은 아이 둘 낳고 쉬다가 처음 본 오디션이었어요. 그래서 저에게는 더 큰 의미가 있죠. 단조롭고 평화로운 생활에서 산뚜짜의 복잡한 감정을 나타내려니 갑자기 이중인격이 된 것 같기도 했구요” 게다가 배유지 씨는 둘째 아기를 낳고 ‘더 이상 노래를 할 수 없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할만큼 정신적으로 무너지는 경험도 했다고 한다. 차차 건강을 회복하고 운동을 하며 긍정적인 마인드를 되찾은 후 그녀가 한 것은 혹독한 노래 연습이었다. 아예 발성법을 바꾸자는 조언에 그녀의 도전정신이 되살아났고 다시금 무대에서 빛나는 그녀로 되돌아 온 것이다.

가장 행복한 순간에 대한 질문도 역시 무대에서 느낀다는 답이 돌아왔다. “관객들과 호흡의 리듬이 딱 맞아떨어질 때가 있어요. 제가 숨을 쉴 때 그 호흡을 같이 하고, 적막이 흐른 후 입을 열어  노래가 나오는 그 순간을 함께 기대하는 관객의 얼굴을 볼 때 더할나위 없는 희열이 있답니다.”
배유지 씨는 발성을 바꾸며 힘들었던 그 시간들도 ‘새로운 나를 만나게 될 것’이라는 기대감으로 벅찼다고 한다. 그러면서 반주자와 ‘음악의 합’이 딱 맞아떨어졌을 때 노래에 생명이 주어지고 날개가 돋는 그 짜릿함이 자신을 늘 무대로 불러세운다고 했다.

천상 노래하는 사람이었다. 그래서 배유지 씨가 눈물이 그렁그렁한 채로 마음 속 절규를 노래부르는 장면은 빨려 들어갈듯한 몰입감으로 가득했다. 그녀를 오래도록 보게 되리라는, 목소리를 오래도록 듣게 되리라는 믿음이 한껏 올라오는 배유지 씨와의 시간이었다.

글/ 한혜정
사진/ 배유지 씨 제공(홈페이지 https://www.yujibae.com/yuji-bae 인스타그램 @yuji_sopranobae 이메일 sop.yujibae@gmail.com )
공연사진/ ZoartPhotograph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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