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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리콘밸리 아트 클래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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왠지 그림을 그린다는 것은 참 어려운 일인 것 같았다. 머릿 속에만 존재하는 것을 내 손으로 형태를 잡아 완성해 나가는 그 과정이 무척 고차원적으로 느껴졌다. 그런데 이곳 아트 클래스의 사람들은 본인이 가장 좋아했던 순간을 어렵지 않게 그리면서, 순간을 영원으로 간직하는 행복을 만끽하고 있었다.

하얀 캔버스가 가장 사랑하는 사람들의 얼굴들로 가득 차게 되고, 바닷가에서 함께 보던 노을이 화폭 가득 다시 떠오르게 하는 곳, 아크릴화로 그리는 아트클래스다.

“아크릴 물감은 잘 마르기도 하고 덧칠을 해서 수정하기도 쉬워요. 검은색 위에 하얀색을 덧칠할 수 있거든요. 잘못 그렸다 싶으면 바로 바꿀 수 있어요. 게다가 세밀하고 정교한 표현도 가능합니다. 그래서 그림을 한번도 그리지 않은 사람일지라도 바로 시작할 수 있답니다. 본인이 그리고 싶은 사진만 골라서 오면 돼요.” 이 클래스의 선생님인 고상미 작가는 수강생들 개개인 맞춤으로 수업을 진행한다. 일단 사진을 여러 장 보내오면 가장 잘 맞을만한 것을 고르고, 프린트를 해서 밑그림부터 준비해 놓는다는 것. 수강생은 작업실에 와서 조금씩 도움을 받아가며 그리기만 하면 된다.



2019년 봄에 시작된 이 클래스에선 팝아트 스타일의 인물화 그리기부터 시작됐다. 단순화된 형태에 라인으로 마무리하는 인물화는 처음 그림을 시작하는 사람들에게 부담없이 시작하기 딱 이다. 게다가 붓을 들고 사진을 가만히 들여다 보면 잊었던 기억이 소환돼서 더 풍부한 그림이 나오기도 한다는 것. 간혹 사춘기 아이들과의 갈등으로 시끄러워진 마음으로 왔다가도 아이의 어릴 적 사진을 보며 눈동자를 그리고 머리카락을 한올한올 붓칠하다 보면 어느덧 마음을 풀게 된다는 사람이 많았다고 한다. 가족을 그린다는 것은 추억까지 그리는 거여서 생각지도 않게 마음이 채워지기도 한다는 것이다.

물놀이가서 찍은 아이들의 발을 그리던 공미연 씨(51, 팔로알토),  그녀 역시 아이들이 다 떠나고 허무하면서 무료했던 삶이 그림을 통해 꽉 채워진 느낌이라 했다. 그녀의 붓놀림은 오래 전에 아이들 발을 씻기던 것처럼 정이 담뿍 담긴 손길로 조심스러웠다. 그런데 다음 번엔 본인의 스타일을 뛰어넘는 도전을 시도해볼 것이라 한다. 늘 꼼꼼하기만 하던 그림 스타일에서 과감하게 붓을 움직이는 방향으로 바꿔볼 생각이라는 것. 그림을 통해 자신을 다시 들여다 보고, 어쩌면 숨어있었을지 모르는 도전정신을 꺼내어 보았다는 점, 변화의 통로가 그림이었다는 것이 신선하게 느껴졌다.

풍성한 핑크빛 작약을 그리던 문민서 씨(49, 산타클라라)는 우연히 시작한 아트 클래스가 본인에게 마음을 내려놓는 방법을 알려줬다고 말한다. 늘 결과가 우선시 되는 실리콘밸리에서 워킹맘으로 지쳐있다가 그리는 과정이 더 소중하다는 것을 다시 깨닫게 되었다는 것이다. 또 사춘기 딸과 뚝 끊어졌던 대화가 같이 그림을 그리게 되면서 끊임없이 이어지는 신기한 경험을 했다며 웃는다.

요즘 이 클래스에서는 인물화가 조금 싫증난 수강생들을 위해 풍경화 그리기도 시작되었다. 꽃을 좋아하는 사람들은 꽃사진을, 트레일을 걷다가 문득 찍어 놓은 하늘과 산의 모습, 여행가서 남겨놓았던 새벽의 하늘 등 핸드폰에만 간직했던 사진을 꺼내어 캔버스로 옮기는 작업을 하고 있다. “사진 찍는 것도 더 즐거워졌어요. 더 잘 찍고 싶어서 선생님께 배우기도 하고, 같이 가서 찍기도 하죠.” 그림을 그리기 위해 여행을 떠나기도 한다는 말처럼 어느덧 이 클래스에서는 모두 그리기를 뛰어 넘은 다른 변화의 모습들을 가지게 되는 것 같았다. 다른 스타일로 도전을 하게 되었다, 가족들과 대화를 시작하게 되었다, 사진을 더 잘 찍으려고 노력한다, 인생에 정답이 없음을 새록새록 깨닫고 마음을 내려놓는다 등등. 그림을 그리다가 나도 모르게 변한 자신을 가장 맞는 색으로 칠하고 즐거워 하는 모습들이었다.

그림을 그리면서 추억을 그리는 것에만 멈춰있지 않고 자신의 긍적적인 변화를 받아들이고 있는 것. 그래서 색이 덧입혀지고 추억이 덧칠해지는 동안만큼은 이 아트클래스의 사람들 모두가 자기 인생의 아티스트였다.

*수업문의 : 408-307-9056, 인스타그램 @colorstory_sammy

글, 사진/ 한혜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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