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닝뉴스에서 보고 땅굴올빼미 봉사 갔다온 후기
본문
모닝뉴스 이벤트 게시판에서 소개됐던 Burrowing Owl volunteer를 갔다. 이벤트 페이지에서 가겠다고 등록하자 봉사장소에 가장 가까운 주소를 받았고, 철문을 지나 자갈밭에 주차를 하니 그 날 일할 장소가 눈 앞에 펼쳐졌다.
Burrowing owl, 즉 땅굴올빼미나 가시올빼미는 특이하게 주행성 올빼미로, 이름처럼 땅굴에 집을 짓고 사는 특징을 가졌다. 꼭 자기들이 땅굴을 파는 건 아니고, 토끼나 프레리독이 지어둔 굴을 차지해 사는 경우가 많다. 일어나서 주변을 둘러볼 수 있는 탁 트인 공간에 서식하는 걸 좋아하는데, 이런 공터가 점점 줄어드는 바람에 개체수가 감소하는 처지가 되어버렸다. 이를 돕기 위해 나선 것이 우리들. 비가 많이 와서 군데군데 물웅덩이가 크게 생겨있었다. 저쪽에는 코요테가 터덜터덜 걸어가고, 다람쥐와 토끼가 굴을 파는 이 곳은 공장과 주거/상가 공간 사이에 위치한 Buffer zone이었다. 여기에 직접 땅을 파서 굴을 만들어주는 줄 알고 마음의 준비를 하고 있었는데 그게 아니라 나중에 입주할 올빼미들이 와서 먹을만한 음식을 심어주는 게 우리 일이었다.
(화분과 구멍. 위에 보이는 건 Gumplant이다.)
그 날 심을 건 Gumplant와 California Sagebrush, 캘리포니아 토종 식물 두가지였다. 이미 여기저기 꼽혀있는 흰색 막대 옆에는 길쭉한 플라스틱 화분들이 놓여있었고, 원하는 곳에 가서 자리잡고 시작하면 됐다. 땅에는 잡초를 막기 위해 mulch가 채워져있어서 흙이 보일때까지 이걸 손으로 긁어내는게 의외로 가장 힘들었다. 흙이 보이기 시작하면 주어진 모종삽으로 땅을 파고, 식물을 자리잡은 후에 구멍을 다시 채워넣고 물을 준 다음, 마지막으로 새 집 마련한 식물 주변에 지푸라기로 원을 그려주면 끝이었다. 이 식물들은 이후 2년까지 주최측에서 물을 주며 성장을 돕는다고 하고, 이 때 얘네를 잘 찾을 수 있게 지푸라기를 둘러주는 것이다.
비 때문에 땅이 물렁해져서 모종삽을 꽂아넣기 어렵지는 않았지만 한 뼘 정도 길이의 식물 뿌리가 땅에 모두 들어갈 수 있게 깊게 파는 것이 꽤 까다로웠다. 또, 어떤 곳에서는 구멍을 파는 동시에 물이 들어치기도 하고, 어떤 곳은 멀치가 워낙 많이 쌓여있어서 흙을 만지기도 전에 팔 힘이 다 빠지기도 했다. 열 몇명의 봉사자들이 땅에 무릎을 꿇고 낑낑대고 있는 모습이 웃기고 힘들만도 했는데, 미국인들에게서 스몰토크를 빼면 시체 아니겠는가. 서로 이런 저런 대화와 함께 단순노동을 하다보니 두 시간이 훌쩍 지나갔다. 잠시 간식과 단체 수다타임을 갖고 한시간 더 일하니 50개 이상의 식물을 심으며 세 시간의 봉사가 끝이 났다. 입고간 바지와 후드 소매가 진흙투성이가 됐지만, 비슷한 관심을 가진 사람들을 오랜만에 만나서 올빼미를 돕는 일을 하니 기분은 상쾌했다. 물론 다음 날에는 다리가 아파서 고생했다.
(식물이 심어진 곳에는 지푸라기가 둘러져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