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세이 / 칼럼

모닝레터 - 서로의 공감을 이끌어내는 신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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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 이사를 와서 열차의 경적소리를 들었을 때는 좀 신기하기도 했습니다. 왠지 모를 향수같은 것이 마음 속에 피어나기도 했고 정취가 있는듯 해서 좋았습니다. 그런데 날이 갈수록 조금씩 짜증이 났습니다. 잠을 설치기도 하고, 낮에 있다가 깜짝 놀라기도 했죠. 얼굴도 모르는 기관사를 향해 성격이 안좋은 것 같다, 저 기관사 오늘 기분이 안좋은가, 그걸 경적소리로 푸는 것 아니냐며 투덜대기도 했습니다. 유난히 크게 들리는 날에는 화도 났습니다. 그런데 우연히 열차 경적소리에는 정해진 패턴이 있어서 자기 마음대로 눌러대는 것이 아니라는 걸 알게 됐습니다. 상황에 맞는 규칙이 있는 것이었습니다. 북미 철도 운영규칙에 따르면 기관사는 모든 교차로에 진입하기 전 적어도 15초 전에 경적을 짧게 4번 울려야 하며, 11가지 상황에 대해 경적 패턴이 정해져 있었습니다. 그리고 최대 볼륨 레벨도 존재합니다.

이것을 알고나자 경적소리가 나면 ‘아, 지금 열차가 건널목을 지나고 있나 보다. 뭔가 동물이든 자동차든 철로 가까이 있는 것을 발견하고 빨리 벗어나라는 것을 알려주는 거구나’ 하는 생각과 함께 얼굴도 모르는 기관사가 친근하게 느껴지기도 했습니다. 자다가 경적소리에 살풋 잠이 깨도 안전하게 운행하고 있는 기관사가 고맙기까지 했구요.

요즘 재택근무가 많아지고, 여름방학이 곧 시작되면서 온 식구가 복닥복닥 한 공간에서 서로 부딪힐 일이 잦아졌습니다. 지나치기 쉬운 부분이지만 사람은 항상 누군가에게 신호를 보내게 됩니다. 기분이 상했다거나, 유난히 컨디션이 안좋은 날, 무엇인가를 원할 때 우리는 표정과 목소리, 몸짓으로 상대방에게 신호를 보냅니다. 아이가 보내는 신호를 부모가 재빨리 알아차리고 무언가를 해결해줄 때 아이가 갖게되는 신뢰는 급상승하게 되죠.  반면 아내의 신호를 남편이 눈치도 못채고 흘려버렸을 때 결과는 천지차이로 나타날 겁니다. 마치 텔레파시를 주고 받는 것 같이 상대방이 신호를 보낼 때 척하고 알아차리게 된다면 아마 얼굴 붉힐 일이 반은 줄어들 것입니다. 화를 내지 않게 하는 배려가 여기서 나오는 것이고, 서로의 마음을 읽어주는 것이야말로 가족간의 사랑을 보다 더 단단하게 해줄테니까요. 피아노 앞에 앉아 몸을 배배 꼬고 있는 아이에게 엄마가 먼저 “지금 안해도 되니까 다음에 할까?” 하고 아이의 신호를 읽어봐 주세요. 아이 얼굴이 환해지는 걸 볼 수 있을 겁니다.

열차가 ‘안전’을 위해 경적을 울리는 것처럼 우리가 먼저 서로의 신호를 읽어내서 ‘안락함’을 찾아내는 것, 이것이 길고 긴 여름방학을 보내는 우리에게 가장 필요한 것일런지도 모릅니다.

글/ 한혜정(모닝뉴스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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