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세이 / 칼럼

실밸 워킹맘 이화정 칼럼_고군분투 실밸 스타트업 맘의 하루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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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전형적인 새벽 스케치

목요일 새벽 2시 30분. 또 잠이 깼다. 새로 소개받은 블록체인 고객사가 괜찮은 회사인지를 모르겠다. 요즘 AI로 인해 언어서비스 업계 매출이 떨어지고 있다는 이 상황에 우리도 새 고객사는 무조건 반겨야 하는 입장 아닐까? 하다가도 왜 하필 스위스 법인인가. 일어나자마자 하루를 종이와 펜으로 시작하자고 다짐한 지 2주도 채 안 된 거 같은데. 이건 예외지! 정당화하며 어둠 속에서 폰을 잡아든다. 글로벌 투자은행에 있는 후배에게 물어봐야겠다. 몇 달 만에 카톡하면서 다짜고짜 내 필요한 것부터 묻자니 미안하다. 지금 홍콩이 몇 시인가? 한국이 저녁 7시 30분이니, 홍콩은 6시 30분. 이 시각이면 아직 퇴근은 안 했을 테고 아직 쭝완역(센트럴역) 사무실 있겠다 싶다. 답톡을 해주니 너무 고맙다. 얘가 시킨 대로 질문을 다 하면 고객사가 재수없다고 떨어져 나갈 거 같다. 사업 8년차로 접어들어 산전수전 겪어 보니 법적 리스크와 기업 윤리는 조직의 사활과 문화를 결정하는 중요성을 지닌다. 신중을 기해서 의심하고 실사(due diligence)를 해보자.

 

그사이 새벽 3시가 넘어간다. 이제 종이와 펜을 잡고 하루를 시작해보자. 아, 그런데 내가 뭐 놓친 게 있나? 구글 캘린더를 들여다보니 오후 2시까지 거의 백투백 미팅으로 꽉 차 있다. 이틀 전 Y컴비네이터 스타트업 도약 프로그램(Y Combinator Startup Accelerator)에 지원하느라 모든 미팅을 1-2주씩 옮겨놨더니 미뤘던 모든 미팅이 이틀 사이에 다 몰려 있다. 창업 초기, 일정 관리도 잘 못 할 때는 미팅 준비도 없이 겨우 들어가서 즉흥적으로 떼우고 어젠다를 훑었었는데, 요즘은 미팅 들어가기 전에 어젠다 구글 문서에 논의할 내용을 꼭 적고자 한다. 대개 일잘러 프로젝트 매니저들 대부분은 모두 조직적이고 치밀한 경향이 있다는 걸 알게 됐는데, 이들은 문서화된 어젠다를 보면 마음의 안정을 느끼는 듯하다. 그 안정감은 두 가지 같다. ‘내 상사가 미팅 전에 어젠다에 대해 숙고를 했구나.’ ‘미팅 시간이 초과되지 않고 정해진 시각에 끝나겠구나.’

미팅을 해보면 팀원들의 업무 스타일을 잘 알 수 있다. 미리 어젠다를 준비해서 정리해오는 사람들과 빈손으로 오는 사람들로 나뉜다고 말하고 싶긴 한데 또 항상 그렇진 않다. 2주 전까지만 해도 미리 어젠다를 정리해 오던 사람들이 어떤 주에는 어젠다를 안 쓰고 들어오는 경우도 있다. 그런데 특기할 점은, 과거 성과와 무관하게, 미리 어젠다 정리를 해오지 않고 미팅에 들어온 사람들이 미팅 후 후속 액션 아이템도 잘 놓친다. 즉, 전엔 어젠다 정리를 잘 하고 팔로업도 잘하던 사람이라 하더라도, 미팅에 허겁지겁 들어온 그 주에는 팔로업도 하나 정도씩 놓치는 것이 대부분이다. 그리고 미팅 후 논의 내용을 어젠다 문서에 잘 정리하는 사람들은 드물고 귀하다. 자기가 해야 할 액션 아이템만 노트에 적고, 전체 미팅 내용은 정리하지 않는 사람들도 많다. 논의 내용을 잘 기억할 수만 있다면 정리하지 않아도 될지도 모르지만, 논의 후 공유를 해야 할 일이 있을 수도 있고 다시 들여다봐야 할 수도 있는데 정리를 하지 않는 것은 미팅에 들인 시간과 에너지를 제대로 활용하지 않는 것이다. 그래서 미팅 내용을 잘 정리하는 사람들을 눈여겨 본다. 우리 회사엔 어젠다 문서에 미팅 내용을 정리하는 습관이 있는 사람이 열 손가락 안에 든다. 다른 회사는 어떤지 모르겠다. 

<다음호에 이어집니다>

**이화정/ 고군분투 실밸 애벌레 기업가. 워킹맘. 재무제표 까막눈으로 스타트업 창업. 인생의 쓴맛을 경험하고 꿈틀꿈틀 기어나아가는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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