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뜨거움 안에 고요를 담아내는 곳, 아리조나 가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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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착한 시간은 낮 열두 시, 난데없는 핸드폰 알람은 더위 주의보 경고 메시지였다. 쨍쨍한 햇빛의 열기아래  크고 작은 선인장들이 가득하니 갑자기 아리조나의 어느 곳에 공간이동이라도 한 것 같다. 팔로알토 스탠포드 대학교 캠퍼스에 있는 아리조나 가든(Arizona Garden)에선 마치 다른 세상에 잠깐 와 있는 듯하게 거닐다가 나오면서 일상의 나를 되찾는 듯한 느낌으로 잠시동안의 완전한 휴식을 맛볼 수 있는 곳이다. 



공식 명칭은 아리조나 가든이지만 흔히 선인장 가든(Cactus Garden)이라고 불린다. 주변을 몇번 지나쳐 본 적은 있었지만, 이런 곳이 있었는지는 알지 못했었다. 마치 비밀의 화원처럼, 겉에서는 잘 보이지 않지만 오랫동안 누군가의 손길을 담뿍 받은 티가 역력하다.

이곳은 조경가 루돌프 율리히(Rudolf Ulirich)가 스탠포드 대학을 설립한 제인과 릴랜드 스탠포드(Jane & Leland Stanford) 부부의 요청으로 만든 곳이다. 원래의 계획은 커다란 인공호수와 멋드러진 정원을 가진 대저택이었다. 하지만 이 부부의 열다섯 살이었던 외아들이 정원이 완성되기 전 1884년에 장티푸스로 세상을 떠났고, 집을 지으려던 계획은 완전히 백지화되었다는 것. 그 후 슬픔에 빠진 부부가 캘리포니아의 모든 젊은이들을 아들처럼 여기려는 마음으로 계획을 바꾸어 스탠포드 대학을 설립하게 된다. 하지만 백년이 넘는 시간동안 아리조나 가든은 방치되다시피 했었고, 황폐해져 원래의 모습을 잃을 뻔 하다가 1997년 이후 자원봉사자들 여럿의 노력으로 지금의 모습을 되찾게 되었다.



쭉 뻗은 야자수들이 언제나 시원한 느낌을 주는 스탠포드 대학의 팜 드라이브(Palm Drive) 오른쪽에는 오크나무와 페인티드 유칼립투스나무가 울창하게 들어서 있는데 아리조나 가든은 그 안쪽에 자리하고 있다. 그래서 바깥쪽에서는 잘 보이지 않는다. 어쩌면 어린 아들을 잃은 부부가 그곳에서 항상 함께 하고 싶어하는 것 처럼 스탠포드 가족묘(Stanford Mausoleum)가 가까이에 있어 아리조나 가든에서 가족묘까지 함께 산책하기에 좋은 코스다.

일단은 조용하다. 선인장의 이미지가 사막의 고요와 닮아 있어서일까, 왠지 다른 나무들이 울창한 숲 속보다도 더 조용한 느낌이다. 단지 작은 도마뱀들과 다람쥐들이 지나가며 사각거리는 소리만 가끔씩 들릴 뿐이다. 그러니 사색하기엔 안성맞춤.
단순하지만 아름답다. 가시들이 뾰족하게 솟아있는 선인장들이 이국적인 느낌이다. 세상의 모든 종류의 선인장이 다 있는듯 하다. 민둥민둥한 선인장부터 화려한 색깔의 꽃을 피우는 선인장에, 기린처럼 보이는 키다리부터 둥근 선이 호방하게 웃고 있는 것 같은 선인장까지 하나하나 뜯어보다 보면 시간이 휘리릭 지나간다.



그 옆으론 다육이들도 다양하다. 500여 개가 넘는 선인장과 다육이들이 모여 있다 하니, 몇몇의 이름을 안다 하더라도 이곳에서는 낯선 선인장, 다육이들이 즐비할 뿐이다. 규모는 크지 않아도 크게 한바퀴를 돌고 그 사이로 들어가 크고 작은 선인장, 다육이들과 인사하듯 지나면 지루하지 않다. 아이들과 함께 가서 가시만 조심시킨다면 이야깃거리도 끊임없이 나올 것 같다. 마치 잠시 짬을 내어 아리조나라도 갔다 온 것 처럼 사진 한컷을 남기기에도 좋다. 인생 사진이 될 수도 있을 것이다. 차로 열 몇 시간을 달려 갔다오지 않아도 충분히 만들 수 있는 추억이 된다. ‘캘리포니아 안에 있는 작은 아리조나’ 라고 생각하면서.

그리고 나선 캠퍼스 이곳저곳을 둘어봐도 좋고, 슬픔의 조각상을 같이 감상하거나 가까이 있는 스탠포드 쇼핑센터에 가서 쇼핑을 하고 맛집을 가는 것도 하루를 즐길 수 있는 추천 코스다.
선인장 정원이므로 되도록 한낮의 태양과 함께 즐겨보시길. 아리조나 가든은 그렇게 뜨거움과 열기가 가득하지만 그 안의 고요는 오래도록 마음에 담을만한 것이었다.

글,사진/ 한혜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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