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아니스트 엄마 안미정의 음악 칼럼_슬픔을 노래하는 슬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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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픔을 노래하는 슬픔
“인간은 심장이다. 심장은 언제나 제 주인만을 위해 뛰고, 계속 뛰기 위해서만 뛴다. 타인의 몸속에서 뛸 수 없고 타인의 슬픔 때문에 멈추지도 않는다. 타인의 슬픔에 대해서라면 인간은 자신이 자신에게 한계다.”
신형철, <슬픔을 공부하는 슬픔> 중에서
묵직하게 시작하는 이번 칼럼의 주제는 ‘슬픔’입니다. 새가 울고, 종이 울고, 산이 운다는 표현에 익숙해져 있다가 미국에 와보니 새는 노래하고, 종은 떨리고, 산은 바람을 머금는다는 표현이 신선한데요 지역과 문화에 따라 ‘슬픔’을 표현하는 방법도 천차만별이랍니다. 그만큼 ‘슬픔’이라는 감정은 예술가들에겐 마치 마르지 않는 샘물처럼 끝없는 창작의 영감을 불러 일으키는 중요한 역할을 해왔어요.
오늘 소개할 곡은 헨델(George Frideric Handel, 1685-1759)의 오페라 ‘ 리날도’의 2막 4장에 나오는 아리아 ‘울게 하소서’입니다.
Lascia ch'io pianga from Opera 'Rinaldo'
<Singer Emma Matthews (Almirena) performs during a dress rehearsal of Handel's 'Rinaldo' at the Opera House on July 19, 2005 in Sydney, Australia. Photo by Patrick Riviere/Getty Images>
헨델은 ‘음악의 아버지’라 불리는 요한 세바스찬 바흐와 같은 해에 독일에서 태어나 영국에서 죽음을 맞이할 때까지 수많은 슬픔을 마주했습니다. 부모님의 반대로 하고 싶었던 작곡 공부 대신 법을 공부해야 했던 어린 시절을 보냈고, 어렵게 시작한 음악가의 길에서 동료 작곡가의 시셈을 만나 세 차례의 파산을 겪기도 했죠. 그럼에도 불구하고 헨델은 취업과 여행을 통해 독일과 이탈리아, 그리고 영국에 도착하기까지 다양한 음악 스타일을 흡수하며 끊임 없이 자신만의 작곡 스타일을 갈고 닦습니다. 그러던 중 영국의 런던을 휴가차 방문한 헨델은 이탈리아어로 작곡된 그의 첫 오페라 ‘리날도(1711)’를 무대에 올렸고, 이 작품이 크게 흥행하며 영국여왕을 비롯한 영국인들의 사랑을 한몸에 받게 됩니다. 온갖 고생 끝에 낙이 온 것이죠.
고생을 한 뒤에 반드시 복이 온다는 법은 없지만 헨델은 베토벤 못지 않은 불굴의 의지로 자신의 성공을 이뤄낸 작곡가입니다. 나이가 들 수록 눈이 보이지 않게 되었음에도 작곡을 멈추지 않았고, 오라토리오 <메시아> 를 포함한 대작들을 여럿 남겼습니다. 또한 헨델은 작곡가들이 겪는 가난의 슬픔을 그 누구보다도 잘 알았기에 1000파운드라는 큰 금액을 영국의 가난한 음악가들을 위한 재단에 기부하여 후원을 아끼지 않았죠.
헨델은 바로크 시대를 대표하는 작곡가로 알려져 있습니다. 특히 ‘울게 하소서’는 바로크 시대의 ‘다 카포 아리아 da capo aria’ A-B-A’ 형식으로 마지막에 되돌아오는 A 부분을 온갖 기교를 더해 꾸며 부르는 능력으로 연주자의 기량을 뽐 낼 수 있는 구조를 가졌답니다. 헨델은 악보에 이 아리아를 부르는 여성의 역할을 ‘(대부분 거세를 통해) 여성의 음역대를 부를 수 있도록 훈련된 남성 성악가인 카스트라토 Castrato’가 부르도록 지정하였는데 이는 무대에 ‘여성’이 등장할 수 없었던 안타까운 시대 상황과 모진 훈련을 통해 감히 흉내낼 수 없는 목소리를 갖게된 남성 음악가의 슬픈 사연이 극명하게 드러나는 부분이 아닐 수 없습니다.
2024년 갑진년의 오늘, 헨델의 ‘울게 하소서’ 아리아야 말로 우리에게 주어진 것들중 당연한 것은 그 어느 것도 없다는 사실을 알려주는 ‘슬픔을 노래하는 슬픔’이 담긴 명곡이 아닐까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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