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세이 / 칼럼

피아니스트 안미정의 음악 칼럼_ Je te veux, I want you, 그대를 원해

컨텐츠 정보

본문

Je te veux by Erik Satie



봄바람이 꽃향기를 머금고 살랑이는 이 계절과 유난히 잘 어울리는 곡들이 있습니다. 3박자 왈츠를 품은 <쥬뜨브 Je te veux>, 프랑스 작곡가 에릭 사티(Erik Satie, 1866-1925)의 곡이 대표적이죠. 한 번 들으면 절대 잊을 수 없는 그 간결하고도 우아한 선율은 에릭 사티 음악의 특징 중 하나인데요 특히 이 곡은 120년 전에 작곡되었다고 믿을 수 없는 모던함까지 더해져 오늘날 많은 사랑을 받는 곡입니다.

시대를 거슬러 역주행하는 곡, 이 쥬뜨브는 1897에 작곡되었다고 추정됩니다. 이 때는 에릭 사티가 ‘몽마르뜨의 뮤즈’로 불리던 수잔 발라동 (Suzanne Valadon, 1865-1938)과 뜨거운 연애를 하던 시절이었죠. 당시 발라동은 내놓으라하는 프랑스 화가들의 화폭에 등장하는 모델로 유명했고 에릭 사티는 이런 매력을 가진 발라동에게 첫눈에 반했다고 알려져 있어요.



쥬뜨브의 짧은 인트로는 발라동을 보고 첫눈에 반한 에릭사티의 둥둥 떠있는 마음을 고스란히 전해줘요. 음악 전체를 감싸안는 왈츠의 경쾌함은 사랑에 빠진 행복한 에릭 사티의 마음을 나타내는 듯 해요. 눈을 감고 쥬뜨브를 감상하다보면 사랑하는 연인을 만나러 가는 길에 꽃다발을 사서 한 손에 들고 가볍게 발걸음을 옮기는 장면이 떠오른답니다.

에릭 사티는 이 곡을 작곡할 때 여러 가지 버전의 악기 편성을 염두해 두었는데 1903년 초연된 보컬과 피아노를 위한 버전에 가사로 차용한 Henry Pacory의 시를 살펴보면 그가 얼마나 진심으로 발라동과 사랑에 빠졌는지를 짐작할 수 있답니다.
“나의 바람은 단 한가지, 당신 곁에서, 오직 당신 옆에서 나의 모든 생애를 보내는 것.”
그러나 영원할 것만 같았던 이들의 사랑은 짧은 반년의 만남으로 끝이 납니다. 일방적으로 이별을 선언한 발라동과 헤어진 에릭 사티는 떠나간 그녀를 그리워하며 남은 생을 홀로 보냈다고 해요. 가난한 신사, 괴짜로 불리며 생전에 큰 각광을 받지 못했던 에릭 사티의 작품은 또 다른 괴짜인 미국의 작곡가 존 케이지(John Cage, 1912-1992)의 노력으로 오늘날 세상에 다시 알려지게 되었어요.

괴짜는 괴짜를 알아보는걸까요? 존 케이지는 남들이 하지 않는 시도와 발상을 추구하며 에릭 사티가 남긴 하나의 메모에 주목했죠. 존 케이지는 ‘모티프를 840번 연속으로 연주하려면 사전에 가장 깊은 침묵 속에서 진지하게 움직이지 않도록 준비하는 것이 좋습니다.’라는 작곡가의 메모(사진)에 따라 에릭 사티의 <Vexations>을 동료 연주자들과 함께 18시간 40여분에 걸쳐 840번 연주한 것입니다. 정말 굉장하지 않나요? 평범함도 특별한 반복을 통해 비범함으로 승화시킬 수 있다는 놀라운 교훈을 얻어보며 또 다시 겸손해 집니다.   

오늘의 평범함이 당신만의 특별한 반복을 통해 비범해질 나날들을 응원하며 쥬뜨브와 함께 가벼운 발걸음으로 하루를 시작하세요!

관련자료

댓글 0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
전체 590 / 4 페이지
번호
제목
이름

최근글


인기글


새댓글


Stats


알림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