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세이 / 칼럼

Novel_김은경의 이야기 1. 이토록 환한 시간(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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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이토록 환한 시간(3)



 은수는 인스타그램 화면을 캡처해 민철과의 톡방에 올렸다.
 
  - 오, 멋진데. 은수야, 우리 지금 하늘 보며 기도하는 거 맞니?
  - 민철이 네가 달 보며 소원 빌자고 했잖아.
  - 내가 지난주에 아내랑 같이 캠핑 가서 읽어준 글 있는데, 너도 볼래?
  - 좋지.
 
  민철은 누군가의 블로그를 캡처한 사진을 보내주었다. 헤르만 헤세의 <행복해진다는 것>이라는 시였다. 전문은 이랬다.
 
  인생에 주어진 의무는 다른 아무 것도 없다네. 그저 행복하라는 한 가지 의무 뿐. 그런데도 온갖 도덕, 온갖 계명을 갖고서도 사람들은 그다지 행복하지 못하다네. 그것은 사람들 스스로 행복을 만들지 않는 까닭. 인간은 선을 행하는 한 누구나 행복에 이르지. 스스로 행복하고 마음속에서 조화를 찾는 한 그러니까 사랑을 하는 한. 사랑은 유일한 가르침. 세상이 우리에게 물려준 단 하나의 교훈이지. 예수도 부처도 공자도 그렇게 가르쳤다네. 모든 인간에게 세상에서 한 가지 중요한 것은 그의 가장 깊은 곳, 그의 영혼, 그의 사랑하는 능력이라네. 보리죽을 떠먹든 맛있는 빵을 먹든 누더기를 걸치든 보석을 휘감든 사랑하는 능력이 살아있는 한 세상은 순수한 영혼의 화음을 울렸고 언제나 좋은 세상 옳은 세상이었다네.
 
  - 민철아, 이 글을 네가 와이프한테 읽어줬다는 거야?
  - 응, 난 캠핑 가면 저녁에 책이나 글을 아내한테 읽어줘.
  - 와, 감동적인 시간이겠다. 넌 기도하듯 사는 것 같네. 참 좋다.
  - 뭐래 쑥스럽게. 근데, 아내는 듣다가 꼭 졸더라. 하하.
  - 그래도 그런 작은 순간도 우리 인생에 귀한 거지. 안 그래?
  - 그래? 오늘 저녁 진짜 기 받네.


 
  캠핑장에서 모닥불을 피우고 나지막한 목소리로 책을 읽어주는 민철. 그리고 민철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는 그의 아내를 상상했다. 맥주와 따뜻한 차가 있는 저녁. 탁탁 장작 타는 소리와 따뜻한 불빛. 연기. 나무 그을리는 냄새. 계곡물 흐르는 소리. 솔향기. 멀리 어두운 숲에서 들려오는 새소리. 숲 너머 달은 떠오르고.
  은수는 환하게 웃었다. 혼자 사는 은수였지만 부러움 같은 감정은 전혀 없었다. 어린 시절의 일부를 함께 공유하고 있어서 그런 걸까. 화려하지 않지만 잔잔하게 흐르는 민철의 삶을 응원하고 싶은 마음뿐이었다. 
 
  - 은수야, 나 달 보고 너를 위한 기도를 해볼게.
  - 그래? 진짜 고마운데.
  - 은수야 건강해!
 
  은수는 잠시 숨이 멎는 듯 벅찬 기분이 들었다. 은수는 재작년 봄에 유방암 수술을 받았다. 민철의 기원이 특별하게 들린 이유였다.
 
  - 은수야, 달 속 옥토끼가 불로장생 약을 만든데. 내 소원은 꼭 이루어질거다.
 
  달을 보고 은수의 건강을 빌어주는 어릴 적 친구. 민철의 마음이 휴대폰 저 너머로부터 달빛을 타고 은수에게로 전해졌다. 다정하고 친절한 아이, 아니, 아저씨였다.
 
  - 민철아 너도 건강하고 계속 행복 잘 만들어.
  - ㅇㅋ. 나 들어갈게. 잘 자.
 
  달빛이 명약이자 약손이 되어 밤을 어루만지고 있었다. 은수는 방금 전에 올린 인스타그램의 달 사진을 터치했다. 수정 화면을 열어 <오래된 기도>의 시 구절을 더 적어 넣었다.
 
    나는 결코 혼자가 아니라는 사실을 받아들이기만 해도
    나의 죽음은 언제나
    나의 삶과 동행하고 있다는
    평범한 진리를 인정하기만 해도
 
    기도하는 것이다.
    고개를 들어 하늘을 우러르며
    숨을 천천히 들이마시기만 해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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