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옻칠 아티스트 이정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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옻칠을 하며 옻빛을 만나다

누구한테나 그렇듯, 이정인 작가에게도 새로운 세상에의 눈이 떠지는 그런 순간이 있었다. 대학 3학년때 세부 전공을 정해야 했을 때였다. 처음엔 막연한 호기심이었다. 하지만 김성수 옻칠 장인의 작업실을 방문한 뒤로부터 그녀는 옻칠 아티스트로 살고 있다. “옻칠에 대해 처음 알게 된 순간이었어요. 그때를 잊지 못하죠. 옻칠 전통기법과 재료를 재해석한 김성수 선생님 작품에 너무 놀랐구요. 그 뒤로 옻칠을 현대적인 오브제로 승화시킨 김설 교수님 수업을 들으면서 옻칠의 세계에 빠져 버렸답니다.”



옻칠, 하면 누구나 나전칠기 정도는 떠올릴 수 있다. 아니면 어머니가 아끼며 광을 내던 자개장의 검은 빛을 생각할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옻칠이 오랫동안 자개장의 ‘카슈’로 대체되어 전통공예로서 퇴색되었고, 그에 비해 신기할 정도의 많은 효능을 가진 재료라는 걸 아는 사람은 많지 않다. 팔만대장경이 천년 가까운 세월을 지내고도 한 점도 부식되지 않고 보존되고 있는 것이 바로 옻칠의 효과다.

이름 그대로 옻칠은 옻나무에서 나오는 진액을 이용한 것을 말한다. 유회백색인 진액을 생칠이라 부르고, 불순물을 걸러내고 입자를 곱게 만들어 칠하면 정제칠, 거기에 철가루를 넣어 산화시키면 검은색으로 되어 흑칠이라 부른다. 또 투명한 정제칠에 천연안료를 넣어 색칠을 만들어 쓰기도 하고 그 자체의 투명함으로 나뭇결을 살릴 수도 있다. 이렇게 옻칠은 다양함을 갖고 있기도 하지만, 상당히 까다롭고 복잡한 도료다. 6시간에서 10시간동안 습도를 70-80 퍼센트로, 온도는 섭씨 26도에서 28도를 유지해줘야 잘 건조되며, 옻칠 도료는 오래 두면 상해버리기 때문에 단기간에 쓸 수 밖에 없다는 것이다. “마치 살아있는 재료를 다루는 느낌이예요. 그 생명력으로 빛을 내는 것 같거든요. 옻칠을 하다보면 참 어렵긴 하지만 또 그래서 더 애정이 생기기도 합니다.”

이정인 작가의 작품은 그냥 보기에 도자기 같았다. 그런데 들어보니 그 가벼움에 깜짝 놀라게 되고, 또 반짝이는 고급스러운 빛에 또 감탄하게 된다. 우리는 보통 나무로 만들어진 나전칠기나 옻칠한 젓가락만 떠올리게 되지만 옻칠 작품의 소재엔 사실상 제한이 없다. 이정인 작가 작품의 가벼움은 바로 재료가 삼베라는 점에 있다. 삼베를 겹겹이 붙이고 틀을 만들어 굳혀 건칠을 하는 꽤 복잡한 과정을 통해 만들어진 작품이다.



 “삼베를 이용하면 표현에 자유가 생긴달까요. 자유로운 오브제가 가능하죠. 작업하면서 화학약품은 전혀 사용하지 않아요. 텍스처를 만들기 위해 흙을 뿌리고 두부를 칠과 섞기도 하죠. 뭔가를 붙일 때에도 칠을 끈적하게 만들어서 사용합니다. 화학약품은 시간이 어느정도 지나면 떨어져요. 꼭 옻칠이 거부하는 것 처럼요.”
옻칠은 이렇듯 아주 다양한 재료에 훌륭한 마감재가 된다. 나무, 삼베, 금속, 가죽, 유리 등에 마감을 하면 마치 다른 생명을 부여받은듯 하게 하는 것이 옻칠이다.

그녀에게 더없이 소중한 ‘옻칠’을 마음에서 잠시 놔두어야 했을 때도 있었단다. 미국에 와서 아이들을 키우며 작업할 시간이 마땅치 않았고, 재료를 구하기도 힘들어 계속 이어갈 수 없을 것 같았다고. 하지만 우연한 기회로 ‘아티스트맘’ 이란 전시를 함께 했고, 아트페어에 참가하게 되면서 마음 속 한켠에 놔두었던 열정의 씨앗이 움트기 시작했다. 팬데믹이 시작되었지만 그녀에게 가장 필요했던 ‘시간이 주어졌다는 것’에 감사할 수 있었다. ‘작게 시작해보자’는 생각에서 십자가, 테이블매트 등 소품들을 만들면서 다시금 작가로서의 마음이 피어났다.



이정인 작가에게 옻칠을 하는 매순간은 작품과 자신이 하나가 되는 기쁨을 맛보게 되는 것이라고 한다. 특히나 마지막 순간, 어떤 도구도 사용하지 않고 오로지 자신의 손을 이용해 손광을 내다보면 살이 닿고 체온이 전해지며 빛이 나게 되고 작품에 자신이 비춰질 때, 혼연일체의 카타르시스가 느껴진다는 것. 이제 그녀에게는 다시한번 옻칠작가로 이곳에서 개인전을 열고 싶다는 열망이 있다. 또 그래서 한국 옻칠의 아름다움을 퍼뜨리는 일에 매진해 보겠다는 계획을 세운다. 번거롭고 까다로운 재료이지만 옻칠같은 색과 느낌을 표현할 수 있는 것은 없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칠흑같다는 말에는 옻칠의 깊은 어둠이 담겨있다. 오랜 어둠을 지나 생겨나는 옻칠의 그윽한 아름다움을 위해 이정인 작가는 오늘도 꾸준히 옻칠을 한다.

글/ 한혜정
사진/ 이정인 작가 제공(인스타그램 @junginlee_ottchil, 이메일 junginlee78@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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