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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아니스트, 임윤찬 콘서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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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와 동시대를 산다는 행복감,
피아니스트 임윤찬을 듣다



9월 18일, 산호세 몽고메리 극장은 오로지 한 사람을 향한 열정으로 가득차 있었다. 객석을 빼곡히 메운 사람들의 대부분은 티켓이 오픈되던 날, 결사적인 클릭으로 3분만에 매진을 기록한 티켓팅 전쟁의 승리자들이다.
푸른 조명을 받으며 빛나고 있는 피아노 앞에 먼저 사회자가 나와 피아니스트 임윤찬 군을 소개했다. “이건 모를 수도 있을 것이다. 임윤찬 군은 시간이 남을 때 잠자는 것을 가장 좋아한다” 는 말에 그렇지않아도 숨을 죽이고 기다리던 객석은 웃음으로 살짝 일렁였다. 그리고는 검정색 수트에 넥타이를 단정히 맨 모습으로 등장하는 임윤찬 군. 얼굴에는 약간의 미소가 보인다.

열 여덟이다. ‘성인이 되기 전에 내 음악이 얼마나 성숙했는지 보기위해 콩쿠르에 나온 것뿐’ 이라고 말한 그는, 반 클라이번 콩쿠르의 최연소 우승자라는 타이틀마저 거머 쥐었다. 하지만 이어졌던 인터뷰에서 기자들은 ‘108살 같은 18살’ 이라는 호칭도 선사했다. 나이를 가늠하기 어려울 정도의 차분함과 묵직한 답변 때문이었다.
그래서 콘서트에 가기 전에 기대감으로 가슴이 벅찼다. 눈 앞에서 펼쳐질 그의 연주는 어떠할까, ‘연주를 위해 태어난 시간여행자’라고 말하는 스승 손민수 교수의 말을 떠올리며 브람스, 멘델스존, 리스트의 이름을 프로그램에서 보고 있었다.

첫 음. 시간이 멈춘듯한 적막을 뚫고 나온 첫 음은 꿈꾸듯 아름다운 선율로 시작됐다. 브람스의 4개의 발라드 (Brahms, Four Ballades, Op. 10). 음과 음 사이의 쉼 하나도 그냥 내보내지 않는듯하고 음들이 반짝거리는 것 같다. 특유의 머리카락이 날리는 움직임에선 음들도 같이 격정적으로 움직인다. 그러다가 조용한 분위기로 바뀔 때면 공기의 흐름마저 바뀌는 것처럼 느껴졌다.

그야말로 ‘반하고 있다’는 말밖에 할 수 없을 정도. 브람스와 슈만 그리고 클라라, 이들의 우정과 관계에 대해 알지 못하더라도 임윤찬 군이 전해주는 4개의 발라드는 나직한 이야기로 시작해 미풍이 살랑거리는듯 하다가 모든 음의 향연같은 느낌으로 채색되는 아름다움이었다.

터져나오는 박수에 인사를 하고 퇴장을 했다가 쿨하게 등장해서, 박수소리가 채 끝나기 전에 바로 시작되는 멘델스존의 판타지 (Mendelssohn, Fantasy in F-sharp Minor, Op. 28). 1악장은 애잔하면서 고혹적인 멜로디로 슬픔을 간직한 이야기의 시작을 보여줬다. 어두운 분위기이지만 폐부 가득히 느껴지는 음량이 증폭을 한다. 그러다 장난치며 재잘대듯 경쾌하게 바뀌는 2악장이 있고, 격정적으로 흐르는 3악장에선 화려한 손놀림으로 긴박감이 느껴진다. 맹렬한 속도지만 음 하나하나가 명료하게 살아 움직이는듯 하다. 인터미션까지 한 시간의 연주였는데, 마치 찰나처럼 느껴졌다.


<반 클라이번 콩쿠르 파이널 무대에서의 임윤찬>


이 시간여행자가 들려줄 다음 곡은 리스트였다. 세 개의 리스트 곡 중 가장 궁금했던 것이 단테 소나타 (Liszt, “Après une lecture du Dante: Fantasia quasi Sonata”). 그가 가장 재미있게 읽었던 책으로 꼽은 것이 바로 ‘단테의 신곡’ 이었다는 점 때문이었다. 아니 어떤 열여덟 살 소년이 단테를 그렇게 읽는다는 말인가. 단테 소나타 연주를 위해 책 전체를 외우다시피 읽었다 하니 본질에서 출발한 그만의 해석이 기다려졌다.

고음부에서 저음부로 내려가는 일련의 음들로 시작해 지옥을 나타내는 열정적인 연주가 이어졌다. 격렬한 터치에 발을 구르는 소리, 땀에 젖은 머리카락이 흩날릴 때는 선율이 그곳에 얹어졌다. 완전히 몰입해 있는 그의 모습에 ‘연주자가 이렇게 아름다웠던가’는 생각이 스쳤다.

박수에 환호가 이어졌다. 기립박수는 당연한 일이었다. 모두 아낌없이 이 아름다운 청년에게 환호를 보내고 있었다. 단테의 지옥에서 구원해 준 고마운 앵콜곡은 바흐의 시칠리아노, 그리고 쇼팽의 녹턴. ‘음악은 이 세상에 존재하는 몇 안되는 진짜’ 라고 생각한다는 임윤찬 군의 말이 떠오르는 순간이었다. 정말로 진심이 느껴지는 진짜를 전해준 위대한 젊은 피아니스트에게 완전히 반해버렸다.

몇번 무대를 들락거리게 하는 끝없이 이어지는 박수에 쑥스러운듯 입을 가리고 수줍게 웃음을 참으며 퇴장하는 모습을 보니 그제서야 108살 도인에서 18살 멋진 청년으로 돌아온듯 했다.

글/ 한혜정
사진/ The Cliburn(cliburn.or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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