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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성진 피아노 콘서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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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롱한 소리에 찬란한 감동이 흐르다
조성진 피아노 콘서트

 

우산을 써야할 정도로 제법 굵은 빗줄기가 어둠을 더 짙게 만드는듯한 12월 8일 늦은 저녁, 버클리 Zellerbach Hall은 3층 객석까지 사람들로 빼곡히 차 있었다.
무대 한가운데 그랜드 피아노의 반짝이는 뚜껑에 비치는 현들이 오늘의 주인공을 기다리고 있었고, 사람들의 설레는 웅성거림은 등장을 알리는 암전과 함께 순식간에 잦아들었다.

사람들의 시선이 한 군데에 쏠리는 순간, 의외로 하얀 셔츠에 하얀 운동화를 신은 낯익은 한 남자가 마이크를 들고 성큼성큼 들어온다. 바로 오늘의 주인공, 조성진 군이다. 다들 이 예상치 못한 광경에 놀라는 정적을 뚫고 나직하고도 부드러운 목소리가 들려왔다.
 “제가 타고 온 비행기가 그만 여행가방을 잃어버렸다네요. 공연복을 입지 않아 죄송합니다. 공연관계자께서 하얀 셔츠를 구해주셔서 지저분한 모습을 보여드리지 않아 다행이긴 하지만요. 이해해주시길 바랍니다.”
조성진 군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는 공연이라니, 저런 편한 모습으로 연주해주는 걸 볼 수 있다니 하는 뜻밖의 즐거운 기분은 그동안 이 공연을 기다려 온 기대감을 한층 더 높이게 했다.
그리고 피아노 의자에 앉아마자 바로 시작되는 연주. 숨을 고르고 잠시라도 안정을 취하려는 모습은 전혀 보이지 않았다. 그리고 사용했던 마이크가 툭 떨어져 큰 소음이 났는데도 조성진 군의 집중력은 전혀 흐트러짐 없이 이어졌다.

놀라웠다. 신비롭게 시작되는 첫 음. 나즈막한 이야기에서 장난치는듯한 재잘거림이 들리다 어느새 고혹적인 분위기가 공연장 전체를 감쌌다. 대충 걷어올린 셔츠의 소매에서 마치 그의 집, 거실에 초대받은 것 같은 편안함이 있고 피아노 페달 앞에 하얀 운동화를 신은 발을 보자니 귀여운 생각도 들었지만, 피아노 소리는 원숙했다. 2015년 쇼핑 국제 콩쿨에서의 소리보다 한층 성숙해졌다는 느낌, 그리고 무대에 놓여진 피아노 한 대와 관객들 사이사이는 영롱한 음으로 채워질 뿐이었다.

 

쇼핑 국제 콩쿨에서 우승한 뒤로 몇 년간 사람들은 조성진에게 쇼팽 스페셜리스트로서의 이미지만을 간절히 원했다. 티켓 파워도 막강했고, 한국에 클래식 붐을 다시 일으킨 것도 그다.
조성진 군은 내가 쇼팽을 몇 번이나 연주하고 있는지 세어 보기 시작했고, 70이란 숫자가 나오면서 세기를 멈췄다고 한다. 그리고 2021년 그는 ‘낯선 곡을 연주하려고 한다. 아마도 바로크가 될 것이다’ 라고 말했다.

 

이 날의 곡도 우리에게는 덜 친숙한 곡이었다. 헨델의 피아노 조곡 F major HWV 427과 HWV 433. 모든 이들을 바로크 시대로 이끌려하는 것 처럼 그는 페달을 밟지 않은 채 가끔은 음을 따라부르는듯한 입모양을 보이며 열정적인 연주를 이어갔다. 그리고 이어지는 곡 역시 브람스의 헨델 주제에 의한 변주곡과 푸가 Op.24. 헨델의 선율을 브람스 특유의 낭만으로 변화시킨 이 작품을 조성진 군은 그만의 우아한 정열로 한음 한음 뽑아내고 있는듯 했다.

“현대 피아노에서 자주 연주되지 않는 작곡가죠. 헨델은 저에게 더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작곡가입니다. 그 헨델에서 영감을 받은 브람스도 멋지죠. 공연 리스트를 만드는 것은 코스 요리를 즐기는 것과 같다고 생각합니다.” 이번 공연을 앞두고 조성진 군이 한 인터뷰에서 밝힌 바와 같이, 그는 헨델에서 브람스 그리고 슈만까지, 바로크에서 낭만주의에 이르는 긴 여정으로 우리를 초대하고 있었다.

대중적이지 않은, 낯선 곡이었지만 그렇기에 더 조성진 군의 피아노에 빠질 수 있었달까. 모든 분위기를 느낄 수 있었다. 춤을 추듯 달리다가 깊은 숨을 쉬며 느려지고 속삭이다가 울부짓듯 내리치는 터치. 손 끝에 담겨진 감정과 곡의 분위기에 따라 순식간에 바뀌는 표정. 몰입하고 있다, 음들이 영롱하게 빛난다, 반짝이고 있다. 그리고 탄식이 흘러나왔다. 두 번째 앵콜곡으로 쇼팽의 폴로네이즈 영웅의 첫 음이 흘러나온 때였다. 누가 먼저랄 것도 없었다. 공연장에서의 침묵이 우선되지도 않는 순간이었다. 쇼팽 콩쿨에서의 그 곡이 훨씬 더 원숙하게 빗장을 풀고 흘러나오는 이 공간에 함께 한다는 것이 너무나 벅찼다.

모두가 끝없는 앵콜을 원했지만, 무대를 계속 왕복하며 고개 숙여 인사를 하다가 두 손을 흔들 때는 이제 이 감동을 안고 각자의 공간으로 돌아가야 한다는 것에 다 동의하는 분위기였다. 조성진 군이 만들어 준 비 내리는 겨울밤의 풍성한 시간은 그렇게 끝이 났다.

글/ 한혜정
사진/ 조성진 인스타그램(@seoungjinchoofficial), calperformances.or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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