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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영화 작가의 상자 속의 풍경, 버려진 상자들이 예술의 언어가 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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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려진 상자들이 예술의 언어가 되다
최영화 작가의 상자 속의 풍경


<Cardboard Yosemite 4>

누구나 터닝포인트를 맞게 된다. 의도를 했건 하지 않았건 나도 모르는 사이에 반환점을 돌거나 생각지 않았던 길로 들어서게 되는 경우다. 최영화 작가에게 찾아 온 터닝포인트는 팬데믹과 택배상자의 콜라보였다.
상대가 누구인지 알지못하는 데서 오는 막막한 공포감에 집밖으로 나가지 못하는 대신 쌓이는 것은  택배상자 뿐이었던 그 때, 최영화 작가는 재활용 쓰레기를 분류하며 택배상자를 자르다가 골판지의 단면에 시선이 꽂혔다. 단면에 드러난 구멍들, 그리고 골판지의 구불구불한 선, 그 옆에 면. 무언가 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번뜩 들어 쌓여있던 박스의 골판지를 자르고 또 잘랐다.

“서예로 시작해 동양화를 전공하면서 ‘선’이 주는 예술성에 늘 마음이 가곤 했죠. 그리고 선들이 모여 면이 생기고 또 여백과 만들어내는 아름다움이 좋았어요. 골판지에서도 선에 꽂힌 셈이예요. 골판지를 잘라서 붙여가면서 형태를 만들고 또 그걸 캔버스에 붙여가다보니 평면에서 반입체로 나중엔 믹스드 미디어 mixed media가 되기도 했죠.”


<Mobius 1 - Marine County>

전시장을 들어가며 보이는 작품들은 사소한 골판지를 넘어서 마치 생명을 부여받은듯 보는 이를 압도하는 위력이 있었다. 알고 봐도 진짜 골판지인가 싶고, 보는 각도에 따라 다른 모습이 드러나 신기하기도 했다.
오로지 칼과 가위만을 이용해 일일이 손으로 잘랐다는 사실은 경이롭기까지 했으며, 게다가 한 작가의 작품이라고 믿기 어려울 정도로 19개의 작품이 저마다 다른 카리스마를 풍기고 있었다. “그래서 더더욱 이번 전시를 통해 대중들의 반응을 듣고 싶었어요. 아직 골판지로 할 것들이 아주 많거든요. 제 나름의 방향성을 잡으려는 전시이기도 합니다.”
골판지에 대한 호기심과 도전정신이 아직은 진행중이라는 최영화 작가. 택배상자 조각들을 자신의 그림에 붙여보던 그 처음의 순간에 사실 확신은 없었다며 웃는다. 기존 작품을 망칠 수도 있다는 생각에 머뭇거리기도 했지만, 워낙 골판지 단면이 주던 강렬함때문에 멈추지 않았다고.


<작품설명을 하고 있는 최영화 작가(사진제공: 최영화작가)>

연작으로 선보인 ‘Mobius 1,2,3’ 에서도 작가는 골판지의 숙명을 드라마틱하게 담아냈다. 안으로 가다보면 밖으로 나오고 끝인가 하면 시작점이기도 한 이 뫼비우스의 띠처럼, 처음엔 나무였다가 종이가 되고 돌아다니다가 다시 땅으로 돌아와 나무가 되는 골판지의 생애를 고스란히 표현해낸 것이다. 게다가 요세미티와 도시 풍경을 그린 작가의 그림이 그림자처럼 함께 자리하고 있어, 뫼비우스의 띠처럼 어떤 순간이나 어떤 공간도 단어만 치환될 뿐 다르지 않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

낙관까지 골판지를 이용해 만든 최영화 작가는 ‘7 Nikes’ 에서 멀리서 본다면 영낙없이 캘리그라피라고 믿을만한 작품을 만들었다. ‘Just Do It’ 글자들을 각각 해체했다가 결합한 형태를 서예로 나타내고, 자른 골판지를 붙여 입체성을 주었으며 그림자 공간에는 승리의 여신 니케를 그려넣은 것. 또 ‘ That One Moment’ 에서도 캔버스 전체를 한 획으로 붓칠을 한듯한 골판지들의 물결이 동양화의 갈필법을 떠올리게 해 눈을 뗄 수 없게 만든다.


<Cardboard Yosemite 1>

특히 작품 여러 개를 통해 요세미티에 대한 애정을 나타낸 최영화 작가는 이제 ‘일월오봉도’같은 전통민화의 느낌을 살려 어쩌면 가장 새로우면서 한국적일 요세미티를 만들려 하고 있다.  “워낙 한 작품을 완성하는데 시간이 오래 걸리다보니 다음 작품은 다른 방식으로 만들고 싶어지곤 해요. 어디서도 본 적이 없는 것 같은 작품을 해보고 싶기도 하구요.”

미국으로 오면서 수묵을 캔버스에 그리며 동양화 작가로서 터닝포인트를 돌았던 최영화 씨. 이제 그녀는 가장 이질적일 수 있는 골판지와 수묵화, 그리고 캘리그라피를 한 캔버스 안에서 만나게 해 서로 결합하고 어우러지는 모습을 담아내며 또 하나의 터닝포인트를 돌고 또 그 길을 새롭게 닦으려 하고 있는 중이다. 그래서 최영화 작가의 시선이 머물렀던 풍경은 상자 속에서만 머물지 않고, 우리에게 색다르면서 깊은 감상의 폭을 선사한다.

글, 사진/ 한혜정

<최영화 작가 작품전, 상자 속의 풍경>
Landscape in a Box

일시: 5월 12일 (금)까지 오전 9시에서 오후 4시 30분까지
장소: 샌프란시스코 총영사관 ( 3500 Clay Street, San Francisco, CA 94118)
최영화 작가 인스타그램 @younghwartcho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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