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세이 / 칼럼

피아니스트 안미정의 음악 칼럼_ 지금 당장 아무것도 못하겠다면 아마 ‘이것’ 때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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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당장 아무것도 못하겠다면 아마 ‘이것’ 때문

 바로 두려움 fear 때문입니다. 2013년 제가 미국에 첫 걸음을 내딛었을 때, 하루에도 수십번씩 오갔던 생각이 있어요. 할까? 말까? 둘 중 하나를 선택해야할때면 항상 하지 않는 것을 결정했었죠. 당시의 저는 커피주문도, 장을 보고 계산하는 것도 모두 반려인에게 의지했어요. 그러던 어느 날, 큰 용기를 내어 커피주문을 시도했어요. 벤티 사이즈 아이스 아메리카노 한잔과 그란데 사이즈 아이스 바닐라라떼 한 잔을 주문해야했죠. 잔뜩 긴장해서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주문을 했다보니 직원이 잘 못알아 듣고 저에게 다시 한번 말해 달라고 했어요. 그런데 저는 이 경험이 너무 부끄럽고 창피해서 영어 말하기에 큰 두려움을 갖게 되었답니다.

 무언가에 두려움이 생기면 무언가를 하는 것이 망설여지죠? 또다시 실패하는 것에 대한 두려움에 맞서기까지는 어쩌면 대단한 결심이 필요한지도 모릅니다. 그런데 이렇게 일상에서 자주 만나게되는 두려움의 순간들은 오늘날 내로라하는 명성을 가진 음악가들에게도 아주 큰 영향을 끼쳐왔답니다.

  

 이번 칼럼에서 소개드릴 음악가는 요하네스 브람스 (Johannes Brahms, 1833-1897) 입니다. 독일 출신의 작곡가이자 피아니스트로 명성을 얻은 브람스는 어린 나이에 그 음악성을 인정받아 당시 독일 음악계에 큰 영향력을 가졌던 로버트 슈만 (Robert Schumann, 1810-1856) 의 총애를 받았어요. 그의 음악은 고전주의와 낭만주의를 넘나들면서도 현대적인 요소를 조화롭게 결합하고 있답니다. 그러나 완벽주의자로 알려진 브람스는 많은 작품을 파기하거나 재작업하는 등의 과정을 거친 것으로 유명해요. 또한 루드비히 반 베토벤 (Ludwig van Beethoven, 1770-1827)의 음악을 경외하여 자신의 첫 번째 교향곡을 세상에 내놓기까지 무려 14년이 걸린 것으로도 유명하고요.

Symphony no.1 in C minor, op.68 by Johannes Brahms


 브람스는 베토벤의 9개 교향곡의 완벽함으로부터 큰 압박감을 느꼈습니다. 한 예로, 브람스는 1번 교향곡을 14년 (1854-1877) 동안 작업하며 여러 차례 개정했어요. 이 과정에서 브람스가 자신의 불완전함에 대해 얼마나 두려움을 가졌는지 알 수 있죠. 브람스는 자신의 첫번째 교향곡이 받게 될 사람들의 평가에 대해서 특히 큰 두려움을 느꼈어요. 그래서 오랜 기간동안 개정을 거듭하며 부족한 부분을 채우려했죠. 결국 브람스는 이 긴 개정의 시간을 통해 자신만의 교향곡 구조와 발전 기법에 더 집중할 수 있었고, 자기 안에 자리잡은 불완전함에 대한 두려움과 개인적 고난을 음악적 깊이와 표현으로 승화시킬 수 있었어요.

 브람스의 1번 교향곡 초연당시, 이 곡은 평론가들로부터 상반된 평가를 받았습니다. 이 곡의 구조적 일관성과 브람스의 음악적 천재성에 대해 극찬한 평론가가 있었던 반면 베토벤에 미치지 못하는 작품이라 평하며 대수롭지 않게 여긴 평론가도 있었죠. 브람스는 특히 베토벤과의 비교에 대해 민감하게 반응했다고 알려져있어요. 하지만 브람스는 교향곡 1번 작곡 이후 두려움에 사로잡혀 모든 것을 중단하기보다는 지속적으로 자신의 작품을 개선하려는 노력을 기울였고, 총 4개의 교향곡을 남겼답니다. 

 두려움 때문에 내가 하염없이 작아 보일 때, 그래서 아무것도 할 수가 없을 때, 잠시 심호흡을 가다듬고 브람스의 교향곡 1번을 들어보는건 어떨까요? 두려움이라는 것은 나만 겪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따뜻하게 속삭여주는 다정한 위로가 전달될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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