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세이 / 칼럼

그리며 하루하루_자연 3: 괭이밥이 피기를 기다리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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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는 비다운 비가 몇 번 내리지 않고서 겨울이 지날까 봐 좀 서운하다. 비가 많이 오면 밖에 나다니기도 귀찮고 집을 소유한 사람들은 집 유지 보수할 거리도 생겨서 달갑지 않은 면도 있을 거다. 그래도 땅을 흥건히 적신 우기의 끄트머리에서 따뜻한 기온과 함께 야생화를 만나면 꽤 반갑다. 2021년 베이 지역에 이사 온 후에는 매년 꽤 많은 겨울비가 내렸고, 덕분에 싱그러운 생명력을 자랑하는 야생화를 곳곳에서 볼 수 있었다.

그중 괭이밥은 산책길에 흔히 만나는 야생화이다. 사라토가 크릭을 산책하다가 이 괭이밥 꽃을 처음 봤을 때는 이 풀이 괭이밥이라는 걸 알아보지 못했다. 괭이밥은 하트 모양 잎 모양 때문에 종종 클로버와 혼동된다. 한국에서도 괭이밥은 매우 흔한 잡초인데 잎과 꽃이 훨씬 작고 잎에 자줏빛이 돌며 화단에 옹색하게 더부살이하는 불청객 정도로 기억한다. 이에 비해 사라토가 크릭에서 만난 풀은 개체 사이즈가 훨씬 크고 잎이 애기똥풀처럼 고운 연둣빛이며 꽃대가 더욱 튼실하고 매끈하게 보였다. 참 다른 모습이었다. 거기에 아침 햇살을 받으며 시냇가를 뒤덮은 괭이밥 군락의 싱그러운 생명력이 얼마나 아름답던지. 사진을 여러 장 찍고 이런저런 방법으로 그려보았지만, 마음에 차는 그림을 그릴 수 없었다. 사진을 찍어둔 그림만해도 여섯 장이고, 그보다 훨씬 많은 스케치를 했다. 결국 나의 실력으로는 그릴 수 없는 장면이구나. 화폭에 담는 걸 포기했었다.


그다음 해, De Anza College에서 수업을 마치고 주차장으로 향하다가 건물 뒤편 나무 밑에서 소담스러운 자태를 드러낸 이 노란 잡초가 다시 눈에 들어왔다.

한 번만 더 네 모습을 그려봐도 되겠니?
잎이 클로버를 닮았지만, 저 멀리서 내 눈을 잡은 건 잎의 싱그러움이지 클로버 모양은 아니야.
싱그러움이 묻히면 안 되니까 잎 모양을 정확히 그리지는 않을 거야.
노란 별 모양의 꽃은 잡초 취급을 받는 옹색한 모습이 아니라
싱싱한 연둣빛 꽃대에 꼿꼿이 고개를 들고 있다.
그렇다고 똑바로 서 있는 건 아니네.
무리의 소담스러운 모습을 돋보이게 할 만큼 자연스러운 곡선을 그리며 서 있구나.

그림 위에 다시 하얀 차콜 펜슬과 붓으로 자유로운 선들을 그려넣어서 싱그러움을 살리는 것으로 마무리했다. 식물의 이름은 그림을 인스타그램에 올린 후 그림책 작가인 지인이 알려주어 괭이밥이라는 걸 알게 되었다. 영어로는 우드 소렐(Wood Sorrel)이라는데 왠지 어울리는 이름 같다.

올해도 괭이밥이 피기를 기다린다.


그림: 노란 야생화(Yellow and Wild), Watercolor on paper, 12x16 in, 2022

By Eunyoung Par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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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2

SVK관리자님의 댓글

  • 익명
  • 작성일
괭이밥, 이름이 구수하고 귀여운데 혹시 괭이밥=고양이밥 이거일까요? ㅎㅎ

Artlang님의 댓글의 댓글

  • 익명
  • 작성일
저도 그렇다고 추측하는데, AI 검색하면 미국 사람들이 고양이 풀이라고 부르는 Catnip하고 Wood sorrel은 서로 다른 과목에 속한다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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