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세이 / 칼럼

워킹맘 이화정 칼럼_고군분투 실밸 스타트업맘의 하루_2. 출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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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출장

정확히 4주 전에 남편과 아이를 미국 집에 두고 혼자 한국으로 출장을 왔다. 그러니까 4주 동안 아이를 보지 못하고 아이를 맡기고서 혼자 한국에 있었던 것이다.



내가 한국행 비행기를 타기 전날 밤 아이를 재워주는데, 아이가 운다. 이제 트윈(tween이란 비트윈을 줄인 ’tween과 teenager의 합성어로, 십대가 되기 전 어중간한 연령대에 끼여 있는 8-12세 preteen 아이들을 말함)이라, 어린애는 아니어서 그런지 아이가 엉엉 울지 않고 눈물만 하염없이 흘린다.

서울대 인문대 진로 특강. 의미 있는 일이지. 그런데 아이를 이렇게 슬프게 만들면서 할 가치가 있나 이런 회의가 먼저 든다. 매일 다 못한 일 생각에 새벽 2-3시에 일어나기를 밥 먹듯 하다 보니 몸도 지친 거 같다. 여기다 13시간 비행할 생각만 해도 마음이 내키지 않는다. 지금 와서 취소하기도 어려운데. 내 특강을 차별화해서 방황하는 학생들에게 더 잘 어필하자며 포스터도 샌프란시스코 아카데미 오브 아트 나온 디자이너에게 의뢰해서 만든 건데. 이틀 앞두고 안 한다고 하면 백업 연사도 없는데 아닌 거 같다. 이 기회를 연결해 준 같은 과 선배 얼굴에 먹칠하는 거고. 행사 기획 때문에 8월부터 메일 주고받으며 고생한 인문대 생생원 조교와 생생원 원장님께도 아닌 것이고. 특강 포스터를 곰곰히 읽고 사전에 질문까지 보낸 18명의 학생들은 또 뭔가. 그래, 힘들어도 이거는 하는 게 맞다.

다음 날 비행기가 몇 시더라? 오후 2시 30분. 12시 30분까지는 공항 도착을 목표로, 아침 10시에 무조건 집을 나서기로 했다. 공항 가는 길에 쿠퍼티노 그랜드 다이너스티에서 남편이랑 딤섬 먹자고 했다.

그런데 구글캘린더에 당장 아침 9시에 고객사 미팅이 잡혀 있다. 갑자기 잡힌 미팅이다.

새 고객사와 첫 미팅이다. 웹사이트 현지화를 의뢰하겠다는 고객에게 그들의 고객이 누구인지, 그들은 뭐가 불편한지 소비자 조사부터 해서 그들의 페인포인트를 파악한 다음 그에 따라 웹사이트의 어디를 먼저 현지화할지 우선순위를 정하자는 미팅이다. 내가 빠질 수가 없는데. 대개 시장조사를 논의하는 현지화 프로젝트는 고객과 실시간으로 미팅하면서 직관적으로 방향성을 잡아서 정성 조사를 제안하기 때문에, 현지화 첫 미팅에는 반드시 들어가야 한다.



미팅에서 소비자 인사이트를 파고드는 일은 너무 신나는 일이긴 하다. 그런데 난 이 조그만 아이에게 아침마다 냉동김밥 아니면 냉동 딤섬 데워서 도시락만 겨우 싸주고 아침도 안 먹이고 보낼 때가 많았던 엄마라는 자각이 온다. 공부 가르쳐주겠다고 선언만 하고 막상 회사 이슈 생기면 바로 화상 회의 하느라 컴 앞에 앉아 있느라 아이가 뭘 공부하는지도 모르게 된 엄마가 나라는 거를 깨닫는다. 내가 대학원 다닐 때 목동 아파트촌에 사는 초등학교 애들 과외를 2년 했었다. 아이들은 나를 좋아했고 공부도 더 더 잘하게 됐었다. 아이러니하게도 막상 내 아이는 봐줄 시간이 없구나. 이런 자각을 하는 내 얼굴 앞에서 아이가 깜박깜박 흘리는 눈물을 보니 내가 희미하게 증발하는 듯 하다.

**이화정/ 고군분투 실밸 애벌레 기업가. 워킹맘. 재무제표 까막눈으로 스타트업 창업. 인생의 쓴맛을 경험하고 꿈틀꿈틀 기어나아가는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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