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세이 / 칼럼

워킹맘 이화정 칼럼_3. 서울 일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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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서울 일상

대개 두 달 일정으로 한국 출장을 가면 부산(친정)에서 거의 매주 서울을 올라간다.

예전엔 서울 호텔비만 200만원이 훌쩍 넘어가곤 했는데, 작년부터 안양 사는 아는 언니 집에 가서 묵거나, 웬만하면 당일치기로 가서 호텔비를 많이 아끼고 있다. 몇 달 동안 이제 돈을 관리하는 데, 공격(offense: 돈 벌기)도 공격이지만 수비(defense: 돈을 지키기)를 정말 강화해야겠다는 생각과 통해 있다.

작년 여름 어떻게 하면 돈 걱정으로부터 해방될 수 있나 궁금해서, 아빠 서재에 있는 <이웃집 백만장자>(The Millionaire Next Door) 책을 슬쩍 갖고가서 KTX 안에서 읽어 봤다. 실은 친정 부모님께 부자 되시라고 내가 선물드린 책인데 당신들이 그 책을 실제로 읽으셨을까? 내가 이 책을 조금 읽고내린 결론. 건성으로 보셨거나 아예 안 읽으셨다.

앞 부분만 조금 읽었는데도, 단순히 부자가 되는 팁이 아니라, 물질주의 가치관에 대한 근본적인 문제제기가 매우 구체적인 사례와 함께 나와 있었다. 나의 기존 라이프스타일에 지진이 일어나고 금이 가면서 무너지는 충격이었다.

1996년에 베스트셀러가 됐다는 이 책을 쿠팡에서 검색하기 전에는 들어본 적도 없었다. 부자나 돈에 관심이 없는 것이 뭔가 고매한 이상을 추구한다고 생각해왔기 때문인가 보다. 이 책은 1996년보다 여러 해 전 기준, 자산 백만 달러 이상인 사람들 천 명을 인터뷰하고 추적해서 연구 관찰한 공통점들을 모아놨다. 이 책 덕분에 비싼 취향과 그들의 자산 가치는 관련이 없다는 사실도 알게 됐고, 덕분에 어찌 됐든 돈 수비를 잘 하려고 이리저리 궁리도 하게 됐다. 그래서 서울 출장 비용도 75% 이상 줄이게 됐다.

그래서 당일치기로 서울 가는 하루는 이렇다.

새벽 4시 45분. 일어난다. 옆방 서재에서 아빠가 성서를 읽고 계시는 모습이 눈에 들어온다. 나도 하고 싶은데 겨우 기도 앱(Hallow) 틀어서 듣고, 집을 나설 채비를 한다.

거실 복도만 살짝 밝힌 어둑어둑한 새벽. 엄마가 간밤에 갈아놓은 아로니아 주스랑 오쿠에 구우셨다는 달걀 2개, 고구마 1개가 들어 있는 쇼핑백이 신발장 입구 문 앞에 있다.

대개 새벽 5시 20분 정도 부산 연산동에서 나서면 30분이 안 걸려 부산역에 도착한다. 항상 놀란다. 그 시간대에 차가 많이 다니고 있고, 골목 청소하시는 분부터 사람들도 꽤 눈에 띄어서. 



KTX 안에 앉자마자 주스를 마시고 랩탑을 꺼내 한두 가지 태스크를 한다. 엄마가 싸주신 간식을 먹으면서. 어느 새 서울역 도착 안내 방송이 나온다. 부랴부랴 마무리하고 컴을 다시 잘 집어넣고 줄이 긴 에스컬레이터를 피해 두 칸씩 계단을 성큼성큼 뛰어올라 플랫폼을 빠져나간다. 재빨리 서울역 3층. 출장 가는 아침에는 내부 회의를 다 없애는데, 종종 외부  컨퍼런스콜이 한두 개 잡히면 어쩔 수 없다. 조용한 곳부터 찾아야지. 태극당 베이커리 카페가 조용한 편. 태극당 들어가면 무조건 ‘쌍화차’를 시킨다. 건강에 조금이나마 도움이 될 거 같아서. 카페를 한 바퀴 돌면서 전기 콘센트가 있는 자리를 찾고, 컴을 켜 준비를 한다.

미팅 마치고, 내부 팀원들에게 후속 액션 아이템들을 전달한 뒤 점심 약속 장소로 바쁘게 간다. 돈을 잘 수비하기로 결심했으니, 콜이 또 잡혀 있거나 지금 급히 처리해야 할 일이 있는 게 아니면 지하철을 탄다. 점심 미팅 센트럴시티, 다시 오후 커피챗 장소 홍대입구로, 저녁 미팅 종로. 이렇게 돌다 보면 그날의 목표를 달성하고 귀가할 시간이 된다.


*이화정(소피아). 고군분투 실밸 애벌레 기업가. 워킹맘. 재무제표 까막눈으로 스타트업 창업. 인생의 쓴맛을 경험하고 꿈틀꿈틀 기어나아가는 중. @caterpillarsdiary  https://www.linkedin.com/in/hsophiale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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