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며 하루하루_일상 2: 이사를 준비하며
본문

지난 4년간 살던 집에서 이사를 나가게 되었다. 4년 전 월세를 구하러 베이 지역을 돌아다니던 기억이 난다. 샌디에이고에는 건축 연도가 비교적 최근이고 실내가 넓은 집들이 많은 터라 이 지역의 낡고 허름한 집 상태는 놀랍기까지 했었다. 그마저도 개 두 마리를 기르고 있어 우리에게 월세를 주려는 집이 없었다. 몇 군데 메시지를 보낸 뒤 회신이 없어 절망이 스멀스멀 몰려오고 있었는데 문자가 왔다. 개가 두 마리여도 괜찮으니까 집을 보러 오라는 메시지였다. 온 식구가 점심을 먹다 말고 벌떡 일어나 달려가서 집은 대충 보고 무작정 보증금 수표를 건네주었다.
2주 후 샌디에이고에서 이삿짐을 실어 보낸 뒤, 개 두 마리와 음식을 가득 채운 아이스박스, 침낭을 싣고 일곱 시간을 운전해서 늦은 밤 이 집에 도착했다. 냉장고에 음식을 채워 넣고 침낭을 깔고 잠을 청했다.
다음 날, 아침 밝은 햇살이 드리우자 이사 전까지 고쳐주겠다고 했는데 여전히 넘어져 있는 울타리, 냉장고에서 녹아서 흐물흐물해진 음식, 기름때로 찐득진득한 부엌이 눈에 들어왔다. 벽에 붙은 스위치 커버의 누런색이 도드라져 보였다. 울타리 틈새로 개가 도망가지 못하도록 하고 울타리를 고치고, 집주인에게 냉장고가 망가졌다고 알리고, 씽크대 기름때를 닦아내는 것으로 산호세 생활을 시작했다.
시간이 가면서 정비되지 않은 낡은 건축물이 즐비한 이 도시에 익숙해졌다.
연중 온화한 샌디에이고와 달리 가을이면 단풍이 들고 봄에는 들꽃이 피는 날씨와 자연이 좋았다. 안방 창문에서 내다보면 곳곳에 과일 나무, 키가 큰 향나무와 낡은 지붕이 보이는 동네 풍경도 마음에 들었다. 대학 시절 학관 건물을 떠올리게 하는 이 집도 잡초를 걷어내고 좋아하는 허브를 심고 실내에 얼룩진 페인트를 덧칠하고 누런 전등도 모던한 등으로 바꾸니까 그럴듯해 보였다. 해마다 직접 만든 거름을 부어준 오렌지 나무는 이제 가지가 휘도록 향기가 진한 열매를 내어주고 허연 곰팡이에 뒤덮였던 장미목은 곰팡이 제거 스프레이를 뿌려주어 잎에서 건강한 윤기가 난다. 이사 온 해 심은 타임과 로즈메리와 같은 허브는 제법 튼실한 관목처럼 자라서 고기 요리나 파스타를 할 때 아낌없이 뜯어 쓸 수 있다.
지난 며칠간 이사 들어갈 월세를 구하고, 집 주인이 이 집을 다시 월세 내놓을 수 있도록 쇼잉을 준비하느라 분주했다.
깨끗하게 고쳐놓은 집에서는 개 두 마리를 받아주지 않아서 그런 집을 찾는 건 일찌감치 포기했고, 두 마리 모두 실외에서만 배변하여 넓은 마당이 필요하니 선택지라고 할 것도 없었다.
새로 구한 월세집은 손수 지은 것이 아닐까 생각이 드는 집이다.
집안 여기저기에 선반도 직접 달아놓고 심지어 침상도 짜서 넣었는데 각이 맞거나 맞닿야 하는 자재끼리 맞닿아 있는 부분이 하나도 없다. 천장에는 제멋대로 등을 달아서 전선이 여기저기 지나다니고 내가 취학 전 살던 집에 달려있었던 모양의 형광등이 달려있다. 뜯어내고 싶은 것 투성이였다.
어쩌면 집을 이렇게 망쳐놓았을까?
생각을 하는데 남편이 말했다.
이 집 주인은 집안 구석구석 고치면서 참 행복했을 거 같아.
중국에서 건너와 직장을 구하고 아이와 함께 집을 고치는 중국인 가족을 떠올려보았다.
그래, 참 행복했겠네.
그럼 이 집엔 행복한 기억이 많겠다.
조잡한 모습을 하고 있는 행복한 기억을 다 덮어버리지 않고 나의 취향에 맞는 공간으로 만드는 일이 당분간 나의 미술 프로젝트가 될 것 같다.
지금 사는 집은 바로 월세가 나갔다. 앞으로 얼마나 살아있을지 모르는 화초들의 웃자란 가지를 정리해 주면서 마음이 짠해진다.
그림: 창밖 풍경, Watercolor on sketchbook, 8x10 in, 2022
By Eunyoung Park
2주 후 샌디에이고에서 이삿짐을 실어 보낸 뒤, 개 두 마리와 음식을 가득 채운 아이스박스, 침낭을 싣고 일곱 시간을 운전해서 늦은 밤 이 집에 도착했다. 냉장고에 음식을 채워 넣고 침낭을 깔고 잠을 청했다.
다음 날, 아침 밝은 햇살이 드리우자 이사 전까지 고쳐주겠다고 했는데 여전히 넘어져 있는 울타리, 냉장고에서 녹아서 흐물흐물해진 음식, 기름때로 찐득진득한 부엌이 눈에 들어왔다. 벽에 붙은 스위치 커버의 누런색이 도드라져 보였다. 울타리 틈새로 개가 도망가지 못하도록 하고 울타리를 고치고, 집주인에게 냉장고가 망가졌다고 알리고, 씽크대 기름때를 닦아내는 것으로 산호세 생활을 시작했다.
시간이 가면서 정비되지 않은 낡은 건축물이 즐비한 이 도시에 익숙해졌다.
연중 온화한 샌디에이고와 달리 가을이면 단풍이 들고 봄에는 들꽃이 피는 날씨와 자연이 좋았다. 안방 창문에서 내다보면 곳곳에 과일 나무, 키가 큰 향나무와 낡은 지붕이 보이는 동네 풍경도 마음에 들었다. 대학 시절 학관 건물을 떠올리게 하는 이 집도 잡초를 걷어내고 좋아하는 허브를 심고 실내에 얼룩진 페인트를 덧칠하고 누런 전등도 모던한 등으로 바꾸니까 그럴듯해 보였다. 해마다 직접 만든 거름을 부어준 오렌지 나무는 이제 가지가 휘도록 향기가 진한 열매를 내어주고 허연 곰팡이에 뒤덮였던 장미목은 곰팡이 제거 스프레이를 뿌려주어 잎에서 건강한 윤기가 난다. 이사 온 해 심은 타임과 로즈메리와 같은 허브는 제법 튼실한 관목처럼 자라서 고기 요리나 파스타를 할 때 아낌없이 뜯어 쓸 수 있다.
지난 며칠간 이사 들어갈 월세를 구하고, 집 주인이 이 집을 다시 월세 내놓을 수 있도록 쇼잉을 준비하느라 분주했다.
깨끗하게 고쳐놓은 집에서는 개 두 마리를 받아주지 않아서 그런 집을 찾는 건 일찌감치 포기했고, 두 마리 모두 실외에서만 배변하여 넓은 마당이 필요하니 선택지라고 할 것도 없었다.
새로 구한 월세집은 손수 지은 것이 아닐까 생각이 드는 집이다.
집안 여기저기에 선반도 직접 달아놓고 심지어 침상도 짜서 넣었는데 각이 맞거나 맞닿야 하는 자재끼리 맞닿아 있는 부분이 하나도 없다. 천장에는 제멋대로 등을 달아서 전선이 여기저기 지나다니고 내가 취학 전 살던 집에 달려있었던 모양의 형광등이 달려있다. 뜯어내고 싶은 것 투성이였다.
어쩌면 집을 이렇게 망쳐놓았을까?
생각을 하는데 남편이 말했다.
이 집 주인은 집안 구석구석 고치면서 참 행복했을 거 같아.
중국에서 건너와 직장을 구하고 아이와 함께 집을 고치는 중국인 가족을 떠올려보았다.
그래, 참 행복했겠네.
그럼 이 집엔 행복한 기억이 많겠다.
조잡한 모습을 하고 있는 행복한 기억을 다 덮어버리지 않고 나의 취향에 맞는 공간으로 만드는 일이 당분간 나의 미술 프로젝트가 될 것 같다.
지금 사는 집은 바로 월세가 나갔다. 앞으로 얼마나 살아있을지 모르는 화초들의 웃자란 가지를 정리해 주면서 마음이 짠해진다.
그림: 창밖 풍경, Watercolor on sketchbook, 8x10 in, 2022
By Eunyoung Park
관련자료
댓글 4
SVK관리자님의 댓글
- 익명
- 작성일

SVK관리자님의 댓글
- 익명
- 작성일

SVK관리자님의 댓글
- 익명
- 작성일
전시회 잘 보고 왔습니다:) 아름다운 작품들 감사합니다.
Artlang님의 댓글
- 익명
- 작성일
어머, 너무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