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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닝레터- 반려가전, 봉식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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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려가전, 봉식이

요즘 결혼식은 주례없이 치루는 것이 트렌드지만, 예전엔 결혼식장에서 안들으면 섭섭할 멘트가 있었습니다. ‘검은 머리가 파뿌리가 되도록, 눈이 오나 비가 오나, 기쁠 때나 슬플 때나..서로의 반려자를 사랑하겠느냐’는 주례사 말입니다.
여기서 반려자라는 단어는 참 많은 것을 품고 있습니다. 한자로는 짝 반(伴)에 짝 려(侶)를 쓰니 그야말로 절대적인 서로의 짝꿍이라는 말이죠.

근래에 이 ‘반려’라는 말은 사람이외의 것에 더 많이 쓰이는 모양새입니다.
애완동물이라는 말은 이제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져 버렸죠. 반려견, 반려묘, 반려토끼 등등이 있구요, 팬데믹 이후 급상승한 것이 반려식물이기도 합니다.
여기까지는 그럭저럭 누구나 받아들일만 할텐데요. 이제부터가 조금 갸우뚱해지는 부분입니다. ‘반려가전’이란 말은 어떠신가요? 이 생소한 단어를 저도 받아들이게 된 일이 있었답니다.
연말에 로봇청소기를 하나 마련하고는 기대만큼의 실력을 발휘하지 않는 것에 약간의 짜증을 내고 있던 차였습니다. 그런데 식구들이 로봇청소기에 ‘봉식이’란 이름을 붙여주고 나니, 뭔가 다른 감정이 생겼습니다. 어디가서 부딪치고 있는 걸 보면 좀 안스럽기도 하고, 시끄러운 소리도 용서가 되는듯 했죠. 거기에 눈알까지 붙여주니 왠지 정말 머리를 쓰며 청소를 하는 것 같기도 하고, 저와 눈이 마주치는 것 같기도 해서 점점 가족처럼 느껴지기도 합니다. 저에게도 반려가전이 생겨버렸네요.

요즘엔 반려가구도 있고, 반려주식, 반려운동 등등 ‘반려’라는 말을 마치 접두사처럼 써서 생물이든 무생물이든 애착관계를 형성하고 돌봄으로써 행복감을 가질 때, 또는 대상으로부터 정서적인 유대를 느낄 때 가족이나 친구같다는 표현으로 쓰는 것 같습니다.

여기서 공통점을 찾자면 ‘돌봄’이 아닐까 싶네요. 내 삶에 의미를 지니는 이 존재를 잘 돌봄으로써 정서적인 면이나 물리적인 것에도 도움을 받게 되는 것이죠.

이런 면에서 보자면 사람이라는 존재는 ‘돌본다’라는 행위에서 느끼는 만족감이 그 어떤 것보다도 크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COVID-19 팬데믹을 통해서도 우리는 서로를 돌보지 못한다는 것만으로 얼마나 문제가 많이 생길 수 있는지 다 경험했으니까요.

봄이 무럭무럭 자라는 요즘입니다. 무심코 보아왔던 것에 애정어린 시선을 준다면 정서적으로 꽃이 피는 순간이 찾아옵니다. 행복한 봄날, 나와 짝을 이룰 무엇이 있을까 찾아보세요. ‘반려’가 붙은 무언가가 많을수록 더 행복해지는 일이 아닐까요.

글/ 한혜정(모닝레터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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